퀴어한, 우리는 무엇을 ‘퀴어함’이라 부르는가. ‘낯설고, 이상하고, 드문’ 성소수자 청소년은 언제 학교에서 드러나는가. 아니, 이미 그곳에 우리의 자리는 없던가. 나 역시 숨 막히는 학교라는 정상성에 애써 몸을 구겨 넣어 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스스로 깨달은 나는 그 규범적인 틀에 맞춰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속에서 한껏 버티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다.
언제쯤이었을까, 남녀공학이 아닌 중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입을 맞추고 싶었을 때? 이를 어쩌나,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누군가 이걸 알면 어떡하지. 그러면서도 뼛속까지 시스젠더 이성애자인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이기심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학교’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이 감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사랑은 시간에 가려져 흘러갔고,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먼지 쌓인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성애가 죄인 줄만 알았던, 마냥 어린 성소수자는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을 벗어난 여러 관점을 공부하며 내 연약함을 탓하기를 그만두었고,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솔직한 감정을 하나둘씩 내보이기 시작했으며,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사히 고등학생이 되고 또래 성소수자의 안부가 궁금해졌던 나는, 대부분 그렇듯이 무작정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이쪽’ 해시태그를 단 계정을 만들고, ‘이쪽여소’ 계정을 팔로우하고, 한발 더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볼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초보 이쪽러’에게 SNS 세상은 너무나 허무했고, 나는 조금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고만 싶었다.
그러던 중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을 발견했고, 운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띵동 식당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곳에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개인적이고도 조금은 독특한 이력 탓에 성인 나이대의 성소수자가 훨씬 많았던 내 주변에는, 열아홉 살이 된 이제야 조금씩 또래 성소수자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너무나 미숙했던 나머지 어떻게 연락을 이어 나가고 어떻게 만남을 대해야 할지 몰라 뚝딱거렸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감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다만 그런데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 하나는, 내가 본 청소년 성소수자가 꽤 많았던 것에 비해 어째서 학교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내심 노심초사하면서도 가방에 온갖 무지개 굿즈를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나조차 그저 ‘시스젠더 이성애자 앨라이’로 치부되는 일상에 무엇을 더 바라냐 싶기도 했지만, 그 의문은 어느새 내 속 깊이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뜻하는 ‘아이다호데이’라는 기회는, 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되었다.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학교 단위의 성소수자 단체가 부스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며 꿈을 키웠던 나는, 언젠가 우리 학교에도 성소수자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점차 실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퀴어(Queer)’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를 합쳐 ‘큐앨라이(QuAlly)’라는 모임의 이름을 만들고, 그 기반이 될 익명의 오픈채팅방을 개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이다호데이’ 홍보지를 약간의 사비를 들여 제작했다. 홍보지 하단에 모임명을 기재한 뒤 전 학반에 한 장씩을 몰래 부착했고, 약 2주가량을 지켜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홍보 초반에야 겨우 한 명이 들어왔다 나갔으며, 그나마 한참 후 또 다른 한 명이 그나마 약간의 시간을 머물러 주었다. 어느 정도의 미온적인 반응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미약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솔직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놀라웠던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 혹은 청소년 앨라이 한두 명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점점 흐르며 우리 학교에는 성소수자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와 같은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굉장한 위안을 주었다. 이 시점에서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말을 인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퀴어 친구들은 일단 ‘살기’부터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살았으면, 행복하게 살았으면, 이런 생각보다 일단 우리 생명 유지부터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월간 이반지하> 1호.
어쩌면 나도 나와 같이 ‘살아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위로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욱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에, 딱히 특별한 활동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살아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청소년 성소수자인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에 부당하게 배제되지 않고, 각종 폭력에 휩싸이지 않고, 혐오와 차별에서 안전하게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 한 가지를 더한다면 우리도 이성애자들처럼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혹여나 이 글을 읽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있다면, 꼭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 꼭 살아있자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존재 때문에 삶을 저버리지는 말자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어느 날 만나서 같이 퀴어하게 웃자고. 나도 그러기 위해 학교에서 이래저래 발버둥 치고 있다고 말이다.
p.s.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가는 건데 이걸 퀴어함이라 일컫는다니, 어쩌면 우리들의 퀴어함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존재 그대로 소중하니, 살아있자!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샘물님의 글에 나타난 '용기'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의 '규범성'을 인식하고, 그 공간의 '안전하지 않음'에 힘들어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범성'과 '안전하지 않음'을 깨트리고자 한 샘물님의 '큐앨라이' 행동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또래 성소수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과 더불어 '살아 있음'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는 샘물님의 마음을 함께 보듬고자 합니다. 심사위원 다랴 |
퀴어한, 우리는 무엇을 ‘퀴어함’이라 부르는가. ‘낯설고, 이상하고, 드문’ 성소수자 청소년은 언제 학교에서 드러나는가. 아니, 이미 그곳에 우리의 자리는 없던가. 나 역시 숨 막히는 학교라는 정상성에 애써 몸을 구겨 넣어 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스스로 깨달은 나는 그 규범적인 틀에 맞춰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속에서 한껏 버티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다.
언제쯤이었을까, 남녀공학이 아닌 중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입을 맞추고 싶었을 때? 이를 어쩌나,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누군가 이걸 알면 어떡하지. 그러면서도 뼛속까지 시스젠더 이성애자인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이기심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학교’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이 감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사랑은 시간에 가려져 흘러갔고,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먼지 쌓인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성애가 죄인 줄만 알았던, 마냥 어린 성소수자는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을 벗어난 여러 관점을 공부하며 내 연약함을 탓하기를 그만두었고,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솔직한 감정을 하나둘씩 내보이기 시작했으며,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사히 고등학생이 되고 또래 성소수자의 안부가 궁금해졌던 나는, 대부분 그렇듯이 무작정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이쪽’ 해시태그를 단 계정을 만들고, ‘이쪽여소’ 계정을 팔로우하고, 한발 더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볼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초보 이쪽러’에게 SNS 세상은 너무나 허무했고, 나는 조금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고만 싶었다.
그러던 중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을 발견했고, 운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띵동 식당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곳에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개인적이고도 조금은 독특한 이력 탓에 성인 나이대의 성소수자가 훨씬 많았던 내 주변에는, 열아홉 살이 된 이제야 조금씩 또래 성소수자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너무나 미숙했던 나머지 어떻게 연락을 이어 나가고 어떻게 만남을 대해야 할지 몰라 뚝딱거렸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감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다만 그런데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 하나는, 내가 본 청소년 성소수자가 꽤 많았던 것에 비해 어째서 학교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내심 노심초사하면서도 가방에 온갖 무지개 굿즈를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나조차 그저 ‘시스젠더 이성애자 앨라이’로 치부되는 일상에 무엇을 더 바라냐 싶기도 했지만, 그 의문은 어느새 내 속 깊이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뜻하는 ‘아이다호데이’라는 기회는, 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되었다.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학교 단위의 성소수자 단체가 부스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며 꿈을 키웠던 나는, 언젠가 우리 학교에도 성소수자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점차 실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퀴어(Queer)’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를 합쳐 ‘큐앨라이(QuAlly)’라는 모임의 이름을 만들고, 그 기반이 될 익명의 오픈채팅방을 개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이다호데이’ 홍보지를 약간의 사비를 들여 제작했다. 홍보지 하단에 모임명을 기재한 뒤 전 학반에 한 장씩을 몰래 부착했고, 약 2주가량을 지켜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홍보 초반에야 겨우 한 명이 들어왔다 나갔으며, 그나마 한참 후 또 다른 한 명이 그나마 약간의 시간을 머물러 주었다. 어느 정도의 미온적인 반응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미약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솔직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놀라웠던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 혹은 청소년 앨라이 한두 명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점점 흐르며 우리 학교에는 성소수자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와 같은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굉장한 위안을 주었다. 이 시점에서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말을 인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퀴어 친구들은 일단 ‘살기’부터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살았으면, 행복하게 살았으면, 이런 생각보다 일단 우리 생명 유지부터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월간 이반지하> 1호.
어쩌면 나도 나와 같이 ‘살아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위로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욱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에, 딱히 특별한 활동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살아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청소년 성소수자인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에 부당하게 배제되지 않고, 각종 폭력에 휩싸이지 않고, 혐오와 차별에서 안전하게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 한 가지를 더한다면 우리도 이성애자들처럼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혹여나 이 글을 읽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있다면, 꼭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 꼭 살아있자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존재 때문에 삶을 저버리지는 말자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어느 날 만나서 같이 퀴어하게 웃자고. 나도 그러기 위해 학교에서 이래저래 발버둥 치고 있다고 말이다.
p.s.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가는 건데 이걸 퀴어함이라 일컫는다니, 어쩌면 우리들의 퀴어함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존재 그대로 소중하니, 살아있자!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샘물님의 글에 나타난 '용기'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의 '규범성'을 인식하고, 그 공간의 '안전하지 않음'에 힘들어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범성'과 '안전하지 않음'을 깨트리고자 한 샘물님의 '큐앨라이' 행동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또래 성소수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과 더불어 '살아 있음'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는 샘물님의 마음을 함께 보듬고자 합니다.
심사위원 다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