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기부는 저에게 ‘조카 돌봄’이에요!” - 기부자 ‘히지’ 님의 이야기

<띵동 기부자, 히지 양(aka 허리케인 김치)님>
🔔히지 님 소개 먼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히지 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영어 닉네임 heezy와 YANG이라서 한글로 쓸 때는 ‘희’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히’로 쓰는 사람도 있어요. 상관은 없는데 저는 보통 ‘히’로 써요. ‘히지 양’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LGBTQ에서 예술 활동이나 공연·행사 기획을 조금씩 시작해서 예술가나 행사 기획·공연자로 활동을 하고 있고요. 또 ‘허리케인 김치’라는 이름으로 드랙 활동도 하고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앨범 작업 활동도 하고 있어요.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퀴어 예술가’. 제가 전업 활동가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하는 활동들이 인권 활동과도 맞물려 있다 보니까 활동가로 불러주시는 분도 있어서 ‘퀴어 예술 활동가’ 이 정도로 짧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 다양한 정체성과 활동이 얽혀 있으신데, 요즘에 더 관심이 가는 정체성 혹은 활동이 있으실까요?
🎙️ 사실 처음은 퀴어 관련된 테마로 일러스트나 정치적 포스터나 그림 위주로 시작을 했었어요. 요즘에는 드랙쇼 기획·공연을 위주로 하고 있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드랙 쇼를 통해 돈을 벌고 인지도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드랙 씬과 퀴어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퀴어와 앨라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해요. 또 퀴어 주제로 하는 공연들이 기획해서 퀴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해요.
🔔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 제가 20대 때부터 퀴어 씬에서 활동 시작할 때부터 활동가분들이 주변에 지인이나 친구로 많았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히 있어요. 가령 띵동 활동가들에게서 띵동에 오는 이들의 얘기도 듣고, 다른 단체에서도 도움을 필요하는 성소수자들의 얘기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나는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성소수자를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주변에서 저를 지지해 주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런 측면에서 저는 특권이 있고 이렇게 상대적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느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 많은 것을 해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 마음가짐이 되었어요.
🔔 그런 마음에서 누구나 와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드랙 공연을 기획하고 계셨군요. 한편으로 서울드랙퍼레이드와 하시는 공연이 궁금한데요. 한번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울드랙퍼레이드의 모습, photo by 고나은 작가님>
🎙️ ‘서울드랙퍼레이드’라는 팀 내지는 단체 이름으로 다양한 드랙쇼들을 개최를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해방촌에서 열리는 ‘서울 드랙 캬바레’가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 홍대에서 열리는 퀴어 파티 ’헤븐’이라는 것도 있고요. 홍대도 LGBTQ와 관련이 있는 공간인데 마땅히 종로나 이태원과 같은 공간에 비해서 퀴어 공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한 달에 한 번씩 파티를 진행하면서 드랙쇼나 퀴어 파티가 이태원이나 종로를 넘어서 또 다른 공간에서 열릴 수 있고 확장되어 나간다는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 지역에 따라서 오시는 관람층이 차이가 있을까요?
🎙️ 네, 많이 달라요. 종로는 거의 게이 남성분들이고, 이태원은 게이 남성분들이 많은데 다른 LGBTQ분들도 종종 조금씩 오시고, 해방촌은 LGBTQ에다가 더해서 외국인분들이 많이 와요. 홍대는 주로 젊은층, 대학생, 교환 학생, 그리고 성별 상관없이 LGBTQ 다양하게 오고 계세요.
🔔 서울 지역 내 다양한 세대와 지역에서 드랙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셨네요!
🎙️ 또 저희 퍼레이드 이름 자체가 서울드랙퍼레이드다 보니까 2018년부터 1년에 한 번씩 행진 행사도 하려고는 하는데요. 팬데믹 전에 두 번 했었고, 팬데믹 동안은 온라인으로 했었어요. 작년에는 팬데믹이 약간 풀리는 시점이어서 행진 대신 콘서트로 했고, 올해는 제가 좀 건강도 안 좋고 바빠서 퍼레이드나 큰 행사는 못하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다시 오프라인에서 행진을 좀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 2018년부터 한 5년 정도 문화의 장을 만들어 오고 계시잖아요. 드랙 공연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생기신 것 같아요. 5년간 변화가 조금 있을까요?
🎙️ 드랙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많이 높아지고, 시선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게이 씬 안에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운 모습에 대한 혐오나 거부감이 있잖아요. 10년, 20년, 30년 전으로 가면 더 심했겠지만, 5년, 10년 전에만 해도 드랙을 하면 ‘기집애 같다’, ‘이렇게 화장하고 변태 같다’,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놀리는 시선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게 쿨하고, 그래서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하거나 우러러보는 그런 시선도 생긴 듯해요. 또 SNS,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드랙분들이 많이 노출되니까 일반 대중분들도 보러 오시고 드랙이 뭔지 알게 되는 등 지난 10년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느껴요.
🔔 맞아요. 그런 변화가 정말 느껴져요. 이제 띵동 기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하는데요. 히지 님은 띵동을 어떻게 알게 되셨을까요?
🎙️ 띵동을 알게 된 건 사실 띵동 만들기 전인 준비 설립 단계부터인데요. 딱 이 한 분 때문은 아니지만 2013년쯤 청소년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활동가들이 띵동과 같은 단체가 필요하고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준비 단계에서부터 띵동을 알게 됐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띵동에 특별한 마음이 있어요. 설립 단계에서도 직접 소정의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고, 옆에서 주변 활동가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너머에서 볼 수 있었죠. 오래 보기도 했고, 처음 태어날 때부터 보면 애착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런 마음 때문에 내 아기는 아니지만 약간 조카 같은 느낌의 애착이 있어요. (웃음)
🔔 와, 준비 단계부터 옆에서 지켜봤으면 성장하는 띵동을 보며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 현재 기부는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같이 하시잖아요. 어떻게 띵동에 기부하자 이렇게 결정하셨을까요?
🎙️ 일단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사가 상업 행사가 아닌 커뮤니티 행사인데요. 커뮤니티 행사는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즐기고 놀 수 있는 게 주된 목적이고 계속해서 커뮤니티라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서로 돕는 등 연결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목적이 있어요. 이러한 목적 아래 저희가 하는 행사들 중에서도 특히 ‘서울 드랙 캬바레’라는 행사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띵동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행사인데요.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같이 자주 활동하는 다른 공연자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저희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체를 떠올리면 띵동이 있었어요. 아까 말한 애착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어렵지 않게 ‘그래 기부를 하자’ 정하고 일요일에 하는 ‘서울 드랙 캬바레’ 공연 수익금을 매달 기부하고 있어요. 그 수익금의 절반은 서울드랙퍼레이드가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도록 운영비로 비축 내지는 사용을 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을 이제 기부를 하고요. 매 공연 전에 한 번씩 띵동에 기부한다는 점을 말하면서 사람들한테는 커뮤니티를 돕는 아이디어도 심어주고, 또 띵동이라는 단체를 홍보하기도 하고요. 사실 수익금의 반을 기부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공연자의 공연비는 잭디 앱에서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 서로 돕는 것이 순환되어 흐르는 느낌이네요!
🎙️ 보면 예술가로서 그림 그리거나 노래, 무대 공연 등을 할 때 펀딩 받기 힘들고 돈과 생활비가 부족하고 아니면 활동비가 없어 막 고민을 할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예술인 지원금 같은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또 다른 퀴어 작가인 故 전나환 작가님이 알려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작품을 만들면 퀴어 커뮤니티 안에 있는 다른 퀴어 친구들이 작품도 사주거나 홍보해 주고요. 또 제가 퀴어문화축제 무대에 여러 번 서면서 수천 명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고 주변 퀴어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옆에서 배운 것도 많고요. 이런 식으로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도와줬어요.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그래서 이게 남을 돕는 기부가 아니라 ‘우리는 커뮤니티니까 같이 가자’ 그런 느낌으로 하는 것 같아요.
🔔 ‘커뮤니티’와 ‘함께 살아가기’를 정말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시는 게 느껴져요. 이런 감각을 띵동에 오는 청소년들도 느끼고, 이 안에서 퍼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히지 님에게 ‘띵동 기부’란?

<나에게 띵동후원이란 '조카 돌봄'이다!>
🎙️ 나에게 띵동 기부란 ‘조카 돌봄’이다! (일동 웃음) 아까 했던 말이긴 한데 내가 직접 설립한 건 아니지만 설립 과정을 옆에서 보고 도움도 주고 해왔기 때문에 내 자식은 아니더라도 조카 같은 존재, 띵동이 나의 조카 같은 존재다. 약간 삼촌이랑 이모처럼 조카가 늘 마음 한켠에 있기 때문에 후원도 하고, 늘 후원을 안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을 하는 존재가 띵동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적어보았어요.
🔔 지금까지 들어보니까 정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그래도 쭉 인터뷰 하시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후원이나 커뮤니티를 돌보는 것과 관련해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성소수자 단체나 활동과 약간 거리를 두고, ‘나는 성소수자이긴 하지만 굳이 활동이나 운동이 나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킨다거나 고생을 해야 되는 그런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는 거니까 그런 분들한테 누군가가 활동이나 운동을 절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활동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변화가 사회와 퀴어 커뮤니티에 찾아온다면 그걸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은 나한테도 분명히 미칠 것이기 때문에 ‘활동이 나와 관계있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활동과 커뮤니티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미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감을 ‘느끼자’이기도 하고 ‘참여하자’이기도 하네요.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 본인의 역량이 된다면 후원이든 활동이든 이런 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 이게 사실은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까 그게 제일 어렵긴 해요. 근데 그냥 저의 청소년 때를 생각해서 말하자면 꼭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각자 다른 이슈들이 있어서 다들 청소년 시기에 힘들겠죠.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 안 돼 있고, 가지고 있는 자원들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고, 학교와 집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들로 인해서요. 물론 (비청소년인) 지금도 고민거리가 많지만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집세라든가, 연애라든가.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가 있다는 걸 알고 저마다의 어려운 시기들을 잘 버텼으면 좋겠다는 말이 하고 싶어요.
예술과 드랙 활동으로 퀴어 커뮤니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데 함께 하는 히지 님! 띵동도 커뮤니티의 소중함과 연결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며 띵동과의 인터뷰 감사드려요!
“띵동 기부는 저에게 ‘조카 돌봄’이에요!” - 기부자 ‘히지’ 님의 이야기

<띵동 기부자, 히지 양(aka 허리케인 김치)님>
🔔히지 님 소개 먼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히지 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영어 닉네임 heezy와 YANG이라서 한글로 쓸 때는 ‘희’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히’로 쓰는 사람도 있어요. 상관은 없는데 저는 보통 ‘히’로 써요. ‘히지 양’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LGBTQ에서 예술 활동이나 공연·행사 기획을 조금씩 시작해서 예술가나 행사 기획·공연자로 활동을 하고 있고요. 또 ‘허리케인 김치’라는 이름으로 드랙 활동도 하고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앨범 작업 활동도 하고 있어요.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퀴어 예술가’. 제가 전업 활동가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하는 활동들이 인권 활동과도 맞물려 있다 보니까 활동가로 불러주시는 분도 있어서 ‘퀴어 예술 활동가’ 이 정도로 짧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 다양한 정체성과 활동이 얽혀 있으신데, 요즘에 더 관심이 가는 정체성 혹은 활동이 있으실까요?
🎙️ 사실 처음은 퀴어 관련된 테마로 일러스트나 정치적 포스터나 그림 위주로 시작을 했었어요. 요즘에는 드랙쇼 기획·공연을 위주로 하고 있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드랙 쇼를 통해 돈을 벌고 인지도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드랙 씬과 퀴어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퀴어와 앨라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해요. 또 퀴어 주제로 하는 공연들이 기획해서 퀴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해요.
🔔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 제가 20대 때부터 퀴어 씬에서 활동 시작할 때부터 활동가분들이 주변에 지인이나 친구로 많았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히 있어요. 가령 띵동 활동가들에게서 띵동에 오는 이들의 얘기도 듣고, 다른 단체에서도 도움을 필요하는 성소수자들의 얘기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나는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성소수자를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주변에서 저를 지지해 주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런 측면에서 저는 특권이 있고 이렇게 상대적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느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 많은 것을 해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 마음가짐이 되었어요.
🔔 그런 마음에서 누구나 와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드랙 공연을 기획하고 계셨군요. 한편으로 서울드랙퍼레이드와 하시는 공연이 궁금한데요. 한번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울드랙퍼레이드의 모습, photo by 고나은 작가님>
🎙️ ‘서울드랙퍼레이드’라는 팀 내지는 단체 이름으로 다양한 드랙쇼들을 개최를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해방촌에서 열리는 ‘서울 드랙 캬바레’가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 홍대에서 열리는 퀴어 파티 ’헤븐’이라는 것도 있고요. 홍대도 LGBTQ와 관련이 있는 공간인데 마땅히 종로나 이태원과 같은 공간에 비해서 퀴어 공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한 달에 한 번씩 파티를 진행하면서 드랙쇼나 퀴어 파티가 이태원이나 종로를 넘어서 또 다른 공간에서 열릴 수 있고 확장되어 나간다는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 지역에 따라서 오시는 관람층이 차이가 있을까요?
🎙️ 네, 많이 달라요. 종로는 거의 게이 남성분들이고, 이태원은 게이 남성분들이 많은데 다른 LGBTQ분들도 종종 조금씩 오시고, 해방촌은 LGBTQ에다가 더해서 외국인분들이 많이 와요. 홍대는 주로 젊은층, 대학생, 교환 학생, 그리고 성별 상관없이 LGBTQ 다양하게 오고 계세요.
🔔 서울 지역 내 다양한 세대와 지역에서 드랙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셨네요!
🎙️ 또 저희 퍼레이드 이름 자체가 서울드랙퍼레이드다 보니까 2018년부터 1년에 한 번씩 행진 행사도 하려고는 하는데요. 팬데믹 전에 두 번 했었고, 팬데믹 동안은 온라인으로 했었어요. 작년에는 팬데믹이 약간 풀리는 시점이어서 행진 대신 콘서트로 했고, 올해는 제가 좀 건강도 안 좋고 바빠서 퍼레이드나 큰 행사는 못하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다시 오프라인에서 행진을 좀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 2018년부터 한 5년 정도 문화의 장을 만들어 오고 계시잖아요. 드랙 공연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생기신 것 같아요. 5년간 변화가 조금 있을까요?
🎙️ 드랙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많이 높아지고, 시선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게이 씬 안에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운 모습에 대한 혐오나 거부감이 있잖아요. 10년, 20년, 30년 전으로 가면 더 심했겠지만, 5년, 10년 전에만 해도 드랙을 하면 ‘기집애 같다’, ‘이렇게 화장하고 변태 같다’,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놀리는 시선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게 쿨하고, 그래서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하거나 우러러보는 그런 시선도 생긴 듯해요. 또 SNS,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드랙분들이 많이 노출되니까 일반 대중분들도 보러 오시고 드랙이 뭔지 알게 되는 등 지난 10년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느껴요.
🔔 맞아요. 그런 변화가 정말 느껴져요. 이제 띵동 기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하는데요. 히지 님은 띵동을 어떻게 알게 되셨을까요?
🎙️ 띵동을 알게 된 건 사실 띵동 만들기 전인 준비 설립 단계부터인데요. 딱 이 한 분 때문은 아니지만 2013년쯤 청소년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활동가들이 띵동과 같은 단체가 필요하고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준비 단계에서부터 띵동을 알게 됐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띵동에 특별한 마음이 있어요. 설립 단계에서도 직접 소정의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고, 옆에서 주변 활동가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너머에서 볼 수 있었죠. 오래 보기도 했고, 처음 태어날 때부터 보면 애착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런 마음 때문에 내 아기는 아니지만 약간 조카 같은 느낌의 애착이 있어요. (웃음)
🔔 와, 준비 단계부터 옆에서 지켜봤으면 성장하는 띵동을 보며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 현재 기부는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같이 하시잖아요. 어떻게 띵동에 기부하자 이렇게 결정하셨을까요?
🎙️ 일단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사가 상업 행사가 아닌 커뮤니티 행사인데요. 커뮤니티 행사는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즐기고 놀 수 있는 게 주된 목적이고 계속해서 커뮤니티라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서로 돕는 등 연결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목적이 있어요. 이러한 목적 아래 저희가 하는 행사들 중에서도 특히 ‘서울 드랙 캬바레’라는 행사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띵동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행사인데요.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 같이 자주 활동하는 다른 공연자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저희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체를 떠올리면 띵동이 있었어요. 아까 말한 애착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어렵지 않게 ‘그래 기부를 하자’ 정하고 일요일에 하는 ‘서울 드랙 캬바레’ 공연 수익금을 매달 기부하고 있어요. 그 수익금의 절반은 서울드랙퍼레이드가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도록 운영비로 비축 내지는 사용을 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을 이제 기부를 하고요. 매 공연 전에 한 번씩 띵동에 기부한다는 점을 말하면서 사람들한테는 커뮤니티를 돕는 아이디어도 심어주고, 또 띵동이라는 단체를 홍보하기도 하고요. 사실 수익금의 반을 기부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공연자의 공연비는 잭디 앱에서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 서로 돕는 것이 순환되어 흐르는 느낌이네요!
🎙️ 보면 예술가로서 그림 그리거나 노래, 무대 공연 등을 할 때 펀딩 받기 힘들고 돈과 생활비가 부족하고 아니면 활동비가 없어 막 고민을 할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예술인 지원금 같은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또 다른 퀴어 작가인 故 전나환 작가님이 알려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작품을 만들면 퀴어 커뮤니티 안에 있는 다른 퀴어 친구들이 작품도 사주거나 홍보해 주고요. 또 제가 퀴어문화축제 무대에 여러 번 서면서 수천 명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고 주변 퀴어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옆에서 배운 것도 많고요. 이런 식으로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도와줬어요.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그래서 이게 남을 돕는 기부가 아니라 ‘우리는 커뮤니티니까 같이 가자’ 그런 느낌으로 하는 것 같아요.
🔔 ‘커뮤니티’와 ‘함께 살아가기’를 정말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시는 게 느껴져요. 이런 감각을 띵동에 오는 청소년들도 느끼고, 이 안에서 퍼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히지 님에게 ‘띵동 기부’란?
<나에게 띵동후원이란 '조카 돌봄'이다!>
🎙️ 나에게 띵동 기부란 ‘조카 돌봄’이다! (일동 웃음) 아까 했던 말이긴 한데 내가 직접 설립한 건 아니지만 설립 과정을 옆에서 보고 도움도 주고 해왔기 때문에 내 자식은 아니더라도 조카 같은 존재, 띵동이 나의 조카 같은 존재다. 약간 삼촌이랑 이모처럼 조카가 늘 마음 한켠에 있기 때문에 후원도 하고, 늘 후원을 안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을 하는 존재가 띵동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적어보았어요.
🔔 지금까지 들어보니까 정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그래도 쭉 인터뷰 하시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후원이나 커뮤니티를 돌보는 것과 관련해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성소수자 단체나 활동과 약간 거리를 두고, ‘나는 성소수자이긴 하지만 굳이 활동이나 운동이 나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킨다거나 고생을 해야 되는 그런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는 거니까 그런 분들한테 누군가가 활동이나 운동을 절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활동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변화가 사회와 퀴어 커뮤니티에 찾아온다면 그걸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은 나한테도 분명히 미칠 것이기 때문에 ‘활동이 나와 관계있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활동과 커뮤니티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미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감을 ‘느끼자’이기도 하고 ‘참여하자’이기도 하네요.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 본인의 역량이 된다면 후원이든 활동이든 이런 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 이게 사실은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까 그게 제일 어렵긴 해요. 근데 그냥 저의 청소년 때를 생각해서 말하자면 꼭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각자 다른 이슈들이 있어서 다들 청소년 시기에 힘들겠죠.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 안 돼 있고, 가지고 있는 자원들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고, 학교와 집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들로 인해서요. 물론 (비청소년인) 지금도 고민거리가 많지만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집세라든가, 연애라든가.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가 있다는 걸 알고 저마다의 어려운 시기들을 잘 버텼으면 좋겠다는 말이 하고 싶어요.
예술과 드랙 활동으로 퀴어 커뮤니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데 함께 하는 히지 님! 띵동도 커뮤니티의 소중함과 연결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며 띵동과의 인터뷰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