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의 든든한 교사 기부자를 소개합니다.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의 강현정 선생님, 그리고 전세란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 분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는 방법을 정리한 가이드북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2025 개정판)를 띵동과 함께 준비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같이 만나볼까요?
🔔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정) 저는 강현정이고, 26년차 초등교사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인권교사모임을 하고 있어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세란) 전세란입니다. 저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14년차 교사입니다.

왼쪽이 전세란 님, 오른쪽이 강현정 님.
🔔 두 분은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에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청소년들이 선생님을 부를 때 ‘샘! 쌤!’이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며 멋진 모임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모임에 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현정) 유엔에서 1995년에 ‘인권교육을 위한 10년’을 선포하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96년 한국에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어요. 학생들이 배우고 자라는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교사들도 배운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우선 ‘인권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느 선생님의 제안으로 98년에 초등교사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교과서 시안을 만들고, 선생님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 책자도 만들고요. 저는 발령받은 2000년부터 함께했는데 매주 만나서 성장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여러 초중등 선생님들이 함께하며 학교에서의 인권교육과 여러 인권이슈들을 나누고 있어요.
(🟢세란) 교사모임을 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을 보는 렌즈가 바뀌었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착하게 대하는데 왜 학생들은 나를 존중해주지 않지 라는 생각과 교실에서 작동하는 수직관계를 이용해서 교사로서의 권위로 누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부대낌이 있었어요. 학생들을 권위로 누르려다 보면 힘들어지고, 그러다 학생들을 쳐다보면 죄책감이 들고. 그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교사모임을 만났어요. 교사모임을 하면서 제가 어려움을 느끼던 것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어요. 교실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인권의 언어로 정리해가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명료해진 거예요.
(🟣현정) 저는 처음에 인권교사모임을 안 만났으면 폭력교사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일동 놀라며 웃음) 풍선도 계속 바람을 넣기만 하면 터지잖아요. 잘하고 싶고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서툴고, 답답함이 쌓이면 폭발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의미였는데, 교사모임을 하면서 바뀌었어요. 나도 학생도 누구나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하고 각자 원하는 게 있다면 서로 설명하면서 관계맺음을 해야한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교실이 안전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불편함을 인권의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같이 이야기해나가려는 시선이나 자세를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 선생님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모임 정도로 생각했는데, 교실에서 갖출 태도를 우물에서 물 길어올리듯 채워가는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란) 교사모임 안에서 질문이 던져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작년(2024) 특수교사와 특수교육대상 아동 사이에 있었던 사건인데요, 어떤 한 사람을 혐오하거나 집단 전체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희 안에서 의문을 갖고 질문을 나눴어요. 이런 식으로 모임이 좋은 자극이 되곤 해요.
(🟣현정) 사회적으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지?’ 라는 생각을 얻게 돼요. 학교 현장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선생님들과 함께 공분하거나, 인정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저희 모임이에요.

띵동 10살 생일파티 기념사진. 가장 왼쪽이 강현정 님,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전세란 님.
🔔 띵동에 기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이후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개정판) 발간 등 띵동과 협력을 하게 된 배경을 들려주시겠어요?
(🟢세란) 2018년 즈음에 교사모임에서 띵동 정기기부 가입신청서를 받았어요(웃음). 이후로 쭉 후원을 해오고 있었고요. 제가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교직생활 중에 담임을 맡은 학생이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이 저에게 깊게 와닿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번에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 개정을 같이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운이 좋게도 제게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해준 친구들이 좀 많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까운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요,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이나 정체성 개념 같은 것을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래에는 지인이 에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제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사모임 톡방에 띵동과 함께할 선생님을 찾는다고 소식이 올라왔을 때 같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정) 저는 띵동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후원을 했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 의미있다고 생각해서요.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가 7년 전에 처음 나왔을 때 완성된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이 좋게 남아있는데, 개정판을 함께 만들 사람을 찾는다기에 교사모임에 충실하게 참여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게 됐어요.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고, 원고가 마무리된 지금은 제가 참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현정 님으로부터 온 인증샷. 띵동이 설립된 2015년부터 꾸준히 후원을 해주신 기부자님들께 선물한 10년기부 기념메달.
🔔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세란) 첫 회의 즈음에 있었던 일을 민석 대표님이 이야기해주신 게 저에게 각인이 되었어요.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 수련회에서 성별에 맞게 희망하는 방도 이용할 수 없고, 개별방도 마련해줄 수 없다는 학교측 입장에 학교에서 가장 기대하던 수련회를 가지 못하고 결국 자퇴를 하게 되었다고 해요. 학교라는 공간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교복, 교육활동도 남녀로 구분되어 있고요. 저는 학교에서 웬만하면 성별을 구분하는 언행을 하지 않아요. 줄을 세울 때에도 출석번호대로 하고요. 이 정도까지는 교실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잖아요. 그런데 수련회 숙소의 성별분리는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시스템적으로 정해진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상황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학교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현정) 가이드북 내용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로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앨라이로서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고 연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당했는데요.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고 많아요. 다다익선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던져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한테는 좋은 부분이었어요.

전세란 님의 담임교실 한켠, 곳곳에 무지개가 있네요!
🔔 띵동에 기부를 하면서 세란 님, 현정 님의 삶에 생긴 좋은 변화가 있을까요?
(🟢세란) 일단 무지개를 주변에 많이 두게 됐다는 것? 민원도 받은 적 있어요. 반에 무지개가 많다고요. 그렇지만 무지개를 두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저희 반 학생들도 선생님이 무지개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고, 그게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무지개는 프라이드의 상징이에요”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다양성에 대한 의미가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도 제가 곳곳에 둔 무지개들로 안전하다고 느껴서 그런 거겠죠? 휴대폰 케이스도 무지개예요(웃음).
(🟣현정) 띵동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원활동가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죠. 어렸을 때 롤모델로 삼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볼 성인 성소수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띵동에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때 좋았다는 이야기요. 들으면서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따뜻했어요. 학교에서 보면 학생들이 또래집단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소수자에 관해 함부로 얘기할 때가 있어요. “너 게이냐?”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 “그건 농담으로 할 얘기가 아니야,” “기분 나쁠 수 있어”라고 짚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띵동이었어요.
🔔 “나에게 띵동 후원이란 ______ 이다.” 빈 칸을 채워주신다면요?
(🟣현정) 나에게 띵동 후원이란 ‘당연한 일’이다. 인권교육을 차례차례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요, 학령별로 다른 내용으로 구성해보려 해도 하다보면 성소수자, 장애, 평화의 무게가 다 같은 거예요. 연대하고 연결하는 게 인권인 거죠.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당연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세란) 나에게 띵동 후원은 ‘닻’이다. 저는 사실 다른 소수자 정체성은 있지만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해본 과정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정상성이라고 여기는 그런 성별관념에 젖어있었거든요. 학급에서도 그렇고 평소에 사용하는 용어들도요. 그런데 나는 띵동을 후원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 관성적으로 기존의 성별고정관념으로 흘러가려는 저를 견인해줘요.
🔔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현정) 있는 그대로 있는 내가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곳곳에 여러분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세란) 저도요, “제가 여기 같이 있어요” 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띵동의 든든한 교사 기부자를 소개합니다.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의 강현정 선생님, 그리고 전세란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 분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는 방법을 정리한 가이드북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2025 개정판)를 띵동과 함께 준비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같이 만나볼까요?
🔔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정) 저는 강현정이고, 26년차 초등교사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인권교사모임을 하고 있어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세란) 전세란입니다. 저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14년차 교사입니다.
왼쪽이 전세란 님, 오른쪽이 강현정 님.
🔔 두 분은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에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청소년들이 선생님을 부를 때 ‘샘! 쌤!’이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며 멋진 모임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모임에 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현정) 유엔에서 1995년에 ‘인권교육을 위한 10년’을 선포하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96년 한국에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어요. 학생들이 배우고 자라는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교사들도 배운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우선 ‘인권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느 선생님의 제안으로 98년에 초등교사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교과서 시안을 만들고, 선생님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 책자도 만들고요. 저는 발령받은 2000년부터 함께했는데 매주 만나서 성장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여러 초중등 선생님들이 함께하며 학교에서의 인권교육과 여러 인권이슈들을 나누고 있어요.
(🟢세란) 교사모임을 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을 보는 렌즈가 바뀌었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착하게 대하는데 왜 학생들은 나를 존중해주지 않지 라는 생각과 교실에서 작동하는 수직관계를 이용해서 교사로서의 권위로 누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부대낌이 있었어요. 학생들을 권위로 누르려다 보면 힘들어지고, 그러다 학생들을 쳐다보면 죄책감이 들고. 그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교사모임을 만났어요. 교사모임을 하면서 제가 어려움을 느끼던 것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어요. 교실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인권의 언어로 정리해가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명료해진 거예요.
(🟣현정) 저는 처음에 인권교사모임을 안 만났으면 폭력교사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일동 놀라며 웃음) 풍선도 계속 바람을 넣기만 하면 터지잖아요. 잘하고 싶고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서툴고, 답답함이 쌓이면 폭발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의미였는데, 교사모임을 하면서 바뀌었어요. 나도 학생도 누구나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하고 각자 원하는 게 있다면 서로 설명하면서 관계맺음을 해야한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교실이 안전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불편함을 인권의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같이 이야기해나가려는 시선이나 자세를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 선생님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모임 정도로 생각했는데, 교실에서 갖출 태도를 우물에서 물 길어올리듯 채워가는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란) 교사모임 안에서 질문이 던져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작년(2024) 특수교사와 특수교육대상 아동 사이에 있었던 사건인데요, 어떤 한 사람을 혐오하거나 집단 전체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희 안에서 의문을 갖고 질문을 나눴어요. 이런 식으로 모임이 좋은 자극이 되곤 해요.
(🟣현정) 사회적으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지?’ 라는 생각을 얻게 돼요. 학교 현장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선생님들과 함께 공분하거나, 인정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저희 모임이에요.
띵동 10살 생일파티 기념사진. 가장 왼쪽이 강현정 님,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전세란 님.
🔔 띵동에 기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이후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개정판) 발간 등 띵동과 협력을 하게 된 배경을 들려주시겠어요?
(🟢세란) 2018년 즈음에 교사모임에서 띵동 정기기부 가입신청서를 받았어요(웃음). 이후로 쭉 후원을 해오고 있었고요. 제가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교직생활 중에 담임을 맡은 학생이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이 저에게 깊게 와닿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번에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 개정을 같이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운이 좋게도 제게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해준 친구들이 좀 많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까운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요,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이나 정체성 개념 같은 것을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래에는 지인이 에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제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사모임 톡방에 띵동과 함께할 선생님을 찾는다고 소식이 올라왔을 때 같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정) 저는 띵동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후원을 했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 의미있다고 생각해서요.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가 7년 전에 처음 나왔을 때 완성된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이 좋게 남아있는데, 개정판을 함께 만들 사람을 찾는다기에 교사모임에 충실하게 참여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게 됐어요.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고, 원고가 마무리된 지금은 제가 참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현정 님으로부터 온 인증샷. 띵동이 설립된 2015년부터 꾸준히 후원을 해주신 기부자님들께 선물한 10년기부 기념메달.
🔔 <학교에서 무지개길 함께 걷기>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세란) 첫 회의 즈음에 있었던 일을 민석 대표님이 이야기해주신 게 저에게 각인이 되었어요.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 수련회에서 성별에 맞게 희망하는 방도 이용할 수 없고, 개별방도 마련해줄 수 없다는 학교측 입장에 학교에서 가장 기대하던 수련회를 가지 못하고 결국 자퇴를 하게 되었다고 해요. 학교라는 공간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교복, 교육활동도 남녀로 구분되어 있고요. 저는 학교에서 웬만하면 성별을 구분하는 언행을 하지 않아요. 줄을 세울 때에도 출석번호대로 하고요. 이 정도까지는 교실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잖아요. 그런데 수련회 숙소의 성별분리는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시스템적으로 정해진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상황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학교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현정) 가이드북 내용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로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앨라이로서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고 연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당했는데요.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고 많아요. 다다익선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던져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한테는 좋은 부분이었어요.
전세란 님의 담임교실 한켠, 곳곳에 무지개가 있네요!
🔔 띵동에 기부를 하면서 세란 님, 현정 님의 삶에 생긴 좋은 변화가 있을까요?
(🟢세란) 일단 무지개를 주변에 많이 두게 됐다는 것? 민원도 받은 적 있어요. 반에 무지개가 많다고요. 그렇지만 무지개를 두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저희 반 학생들도 선생님이 무지개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고, 그게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무지개는 프라이드의 상징이에요”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다양성에 대한 의미가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도 제가 곳곳에 둔 무지개들로 안전하다고 느껴서 그런 거겠죠? 휴대폰 케이스도 무지개예요(웃음).
(🟣현정) 띵동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원활동가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죠. 어렸을 때 롤모델로 삼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볼 성인 성소수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띵동에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때 좋았다는 이야기요. 들으면서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따뜻했어요. 학교에서 보면 학생들이 또래집단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소수자에 관해 함부로 얘기할 때가 있어요. “너 게이냐?”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 “그건 농담으로 할 얘기가 아니야,” “기분 나쁠 수 있어”라고 짚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띵동이었어요.
🔔 “나에게 띵동 후원이란 ______ 이다.” 빈 칸을 채워주신다면요?
(🟣현정) 나에게 띵동 후원이란 ‘당연한 일’이다. 인권교육을 차례차례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요, 학령별로 다른 내용으로 구성해보려 해도 하다보면 성소수자, 장애, 평화의 무게가 다 같은 거예요. 연대하고 연결하는 게 인권인 거죠.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당연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세란) 나에게 띵동 후원은 ‘닻’이다. 저는 사실 다른 소수자 정체성은 있지만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해본 과정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정상성이라고 여기는 그런 성별관념에 젖어있었거든요. 학급에서도 그렇고 평소에 사용하는 용어들도요. 그런데 나는 띵동을 후원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 관성적으로 기존의 성별고정관념으로 흘러가려는 저를 견인해줘요.
🔔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현정) 있는 그대로 있는 내가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곳곳에 여러분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세란) 저도요, “제가 여기 같이 있어요” 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