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 스토리

띵동과 함께해주시는 기부자들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소개드립니다. 어떻게 띵동을 알게 되었고, 기부까지 연결되었는지 함께 만나볼까요?


띵동과 함께하는 곁,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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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띵동을 만나, 이제는 띵동의 자원활동가가 된 '겸, 예림'을 소개합니다!

띵동에서는 자원활동가 ‘띵가띵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올해(2025) 띵가띵가 11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두 명의 자원활동가가 있습니다. 10대 때 띵동을 만나, 이제는 띵동의 자원활동가가 되어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고 있는 겸👨🏻‍🎨, 그리고 예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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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청소년으로서 띵동을 만나, 8년 후 올해(2025) 띵동 자원활동가로 돌아온 예림👨‍🎤(왼쪽)과 겸👨🏻‍🎨(오른쪽)


🔔 어서오세요! 예림 님, 겸 님. 지금은 띵동의 자원활동가 띵가띵가로 활동하고 계시죠. 띵동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예림👨‍🎤) 띵동을 처음 만난 건 17살 정도였어요. 그때는 트위터를 통해서만 친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퀴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곳이 띵동이에요. 사이버 공간 안에서 주고받던 이야기를 목소리를 내서 대화하는 경험이 새로웠던 기억이 나요. 제가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인데도 나와 같은 성소수자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띵동에 가면 무조건 만날 수 있으니까 좋았어요. 

(겸👨🏻‍🎨) 저도 비슷한 시기에 띵동에 찾아왔어요. 17살 때니까, 아마 2018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처음 띵동에 온 건 상담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그때는 미아사거리(서울 성북구 소재)에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 와글와글 따뜻한 분위기였던 게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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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참여 프로그램 ‘띵동식당’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는 예림👨‍🎤


🔔 두 분이 올해 동시에 띵동 자원활동가로 지원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면서요?

(예림👨‍🎤) 오랜만에 만났는데, 띵동 지원활동가에 지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 나도!’ 했죠.

(겸👨🏻‍🎨) 둘이 같은 마음이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요. 띵동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참여 프로그램으로 만난 4인방이 있어요. 저의 변화를 함께 지켜본 친구들이기도 해요. 예림은 저의 트랜지션 과정을 전부 함께한 친구이고, 성별정정을 할 때 법원에 제출할 인우보증서도 써줬어요. 개인정보가 많이 필요한 것이라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흔쾌히 써주더라고요.

(예림👨‍🎤) 당연히 되지! 띵동에서 만난 친구들은 소꿉친구, 동네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성소수자 소꿉친구는 만들기 어렵잖아요. 학교 친구, 동네 친구 사귀듯 띵동에서 퀴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성소수자인 친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생애주기를 함께 보낸 게 특별해요. 그냥 친구들 중 한 명인데, 성소수자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겸👨🏻‍🎨) 처음에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로 만나서 지금은 ‘이 친구도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서 잘 살고 있구나’ 하며 위안이 돼요. 그리고 짠! 운명적으로 띵동에 환원이 된 느낌. 

(예림👨‍🎤) 지금 자원활동을 하면서, 특히 띵동식당에서 참여 청소년들이 서로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연스럽게 만나 친구가 되는 게 어려운 것을 아니까요. 제가 10대 때 ‘다음 달 토토밥(지금의 띵동식당) 갈거야?’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는 게 좋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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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띵동을 알리고 있는 겸👨🏻‍🎨


🔔 띵동이 2015년 개소 이후로 여러 번 이사를 했는데, 두 분은 거의 모든 변천사를 알고 있겠네요.

(예림👨‍🎤) 지금 센터에 비하면 예전 공간들은 정말 가정집 같은 곳이었어요. 미아사거리 이후에는 한성대입구 쪽으로 이사를 갔었죠? 제가 4호선을 잘 타지 않는 동네에 사는데, 그때도 지금도 4호선은 띵동에 갈 때 타는 지하철이에요. 

(겸👨🏻‍🎨) 한성대입구가 미아사거리보다는 큰 곳이었지. 저는 경기도 고양시에 쭉 살고 있는데, 한 번 오는데 1시간 반 이상 걸렸거든요. 그래도 자주 왔었어요. 왜냐면 정말 필요했으니까요. 지금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만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성남에서 왔어요” “아침 일찍 고속버스 타고 왔어요” 하는 것을 듣는데, 그럴 때마다 띵동이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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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10주년 생일파티에서, 왼쪽 예림👨‍🎤 오른쪽 겸👨🏻‍🎨


🔔 띵동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던 청소년 시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예림👨‍🎤) 지금은 띵동식당이 된, ‘토토밥’이요. 그냥 밥 같이 먹는 프로그램인데, 지금 생각하면 밥 같이 먹는다는 게 진짜 크구나 싶어요. 밥 한 끼 같이 하는 사이에 친구가 생긴다는 것에서 좋았어요.

(겸👨🏻‍🎨) 10대 때 띵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요. 예림도 그 중 한 명이고요. 저는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프로그램, T-go가 기억에 남아요. 레인보우 내비게이션이라는 별칭도 있었는데, 정말 내비게이션처럼 트랜스젠더 청소년이라면 가지고 있을 궁금증이나 고민을 화두로 올리고 같이 풀어헤쳐보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었어요. 이후로도 띵동에서 꾸준히 상담을 하면서 힘든 고민을 풀어나가고, 마음이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띵동의 자원활동가로 귀환하셨죠. 띵동 센터에 오랜만에 왔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예림👨‍🎤) 한성대입구는 가정집 같았고, 미아에 있을 때는 사무실 같았는데요. 지금은 진짜 ‘센터’ 같아요. 한쪽에서는 상담을 받고, 한쪽에서는 프로그램을 하고, 또 한켠에서는 활동가 쌤들이 업무를 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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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의 오픈홀. 청소년 성소수자가 상담 전후로 편하게 쉬고, 먹고, 놀 수 있는 센터의 주요 공간입니다.


🔔 이사를 다닌 여러 공간 중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나요?

(예림👨‍🎤) 지금 여기요. (웃음) 가정집 같았을 때 생각해보면, 활동가 쌤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는 드네요.

(겸👨🏻‍🎨) 지금 센터는 화장실이 3개나 되잖아요. 이전의 공간들과 비교해보면 프로그램실도 따로 분리되어 있고요. 이사를 가면서 이런 조건을 유지하면 좋을텐데, 많은 후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림👨‍🎤) 지금 센터는 젠더표현 공간이 따로 있어요. 예전에는 젠더표현을 연습하고 싶을 때 활동가에게 요청하고 특별히 부탁해서 받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젠더표현존에서 ‘저거 뭐예요?’하면 활동가들이 ‘마음껏 해보세요’하는 식으로 장벽이 낮아진 느낌이 들어요. 오늘 다시 보니까 메이크업 도구 사용하는 방법이 자세히 써있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섬세하고 친절하게 다가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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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의 젠더표현 공간. 메이크업도구와 바인더(가슴 압박 속옷) 등 젠더표현을 자유롭게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 띵동은 왜 있어야 할까요?

(겸👨🏻‍🎨) 청소년 성소수자는 여러 겹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생각해요. 학교, 가정, 또래관계 모든 곳에서 당연한 것을 못 누리고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저 역시도 10대 때 띵동에 와서야 ‘이런 나여도 괜찮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띵동은 누군가가 무탈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청소년이 ‘나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예림👨‍🎤) 커뮤니티의 필요성이 저에게는 중요한 가치관이거든요. 여기에 뿌리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띵동에서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많은 생애주기를 거치며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청소년기에 성소수자로 정체화를 하는 것도 어렵고 거기에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띵가띵가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우리가 여러분의 곁에 항상 있다’는 걸 알려드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언제든 달려와도 되고, 언제든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확신을 주는 공간이니까요. 


🔔 띵동에 기부하기를 망설이는 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겸👨🏻‍🎨) 작은 금액이라도 그 온기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기도, 세상을 믿게 하기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림👨‍🎤) 우리가 일상을 꾸려오는 게 어려웠던 만큼, 청소년 성소수자가 덜 어려운 하루를 만들어주시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하루를 만들어주세요.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예림👨‍🎤) 띵동 이용 청소년이었다가 자원활동가가 된 저희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저나 겸처럼 띵동에 ‘돌아’올 수 있는 또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가 많아지려면 띵동이 계속 있어야겠죠. 저희가 인터뷰를 안 해도 될 만큼, 많은 청소년이 오래오래 잘 지내서 활동가도 되고 띵동이 더 커지고 멀리 가고 했으면 해요. 그러려면 후원을 많이 받아야겠지. (웃음)

(겸👨🏻‍🎨) 저는 띵동을 만나서 무탈한 어른을 넘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한테 제가 청소년 시절에 도움을 받았던 성소수자 기관에서 활동을 하려 한다 하니까 ‘선순환 구조네’라고 하더라고요. 청소년이 좋은 성소수자 일원으로 자라서 이렇게 돌아와 받았던 도움을 나누고, 띵동이 더 커져가는 구조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