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은 그렇게 빨리 지더라. 봄비에 꽃잎은 떨어지고, 멀리 떨어진 교실 창문에도 벚꽃잎이 가득하더라. 그런데도 비는 더 거세지고, 천둥은 땅이 꺼져라 외쳤어. 봄의 심장이 일주일 만에 휩쓸려 사라졌지.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 순간이 얼마나 덧없었던지,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영원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영원이라는 건 없겠지만.
내가 생각해 봤는데, 벚꽃은 꿈과도 같은 것 같아. 사람들은 벚꽃이 지면 그걸 추억으로 기억하지. 이따금 사진으로 “그래, 즐거웠었지” 하면서 말이야. 그러곤 유난히 그해에 벚꽃이 빨리 졌다고들 해. 사실은 말이야 저번 해에도, 그 저번 해에도. 벚꽃은 일주일만 필 수 있는데 말이야. 우리는 추억을 항상 뭉뚱그려 떠올리곤 해. 사실 꿈도 똑같아. 꿈도 두루뭉술하잖아. 그래서 난 꿈을 되게 싫어했어. 괜히 느낌만 남아서 있지도 않은 전 여친인 양 떠올리게 되잖아. 그래, 맞아 마치 흔적처럼. 정말 ‘그립다’와 ‘잊은 것을 떠올리고 싶다’는 다를 텐데 말이야.
그거 알아? 너는 내 꿈에 네 번 나왔어. 사실은 꿈꾸고 나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해 낸 건 딱 네 개야. (사실은 수십 개의 네가 나오는 꿈을 꾸었지만, 꿈이라는 이름답게 잊어버렸지 뭐야) 왜 그런지 알아? 전부 악몽이었거든. 이게 무슨 말을 뜻하는지 알아? 꿈속의 너는 내 마음에 네 개의 흔적을 주었다는 말이야. (네가 전 여친이 된다는 말은 아니야) 이제부터 그 꿈의 흔적에 대해 알려줄게.
첫 번째 꿈은 장작불이었어.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을 마주 보고 우리는 앉아 있었지. 내가 말했었나? 나는 겁이 많아서 불을 무서워한다고. 실습 시간에 알코올램프를 쓰다 새끼손가락에 화상을 입었거든. 내가 그땐 겁이 없었지. 근데 그 후부터 불이 되게 무서워지더라. 그렇게 선생님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도, 나는 항상 큰코다친 후에 두려움을 알게 되지. 단 한 개만 먹을 수 있는 독버섯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나는 그 두려워하는 불을 떨떠름하게 보고 있었어. 꿈속이어도 그때처럼 뜨겁게 느껴졌지. 그때, 네가 입을 열었어. 꿈속의 너는 말이야, 내 귓가에 나를 좋아한다고 속삭였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꿈에서 깨어났어. 내가 불 속으로 뛰어들었거든. 사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꿈속의 너는 결국 무의식 속의 나일 뿐이었고.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어. 믿고 싶지도 않았지. 내 마음에 생겨난 첫 번째 흔적이었어.
두 번째 꿈은 수영장이었어. 물이 너무 깊어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곳이었지. 이건 네가 알고 있을 것 같아. 수영장에서 물에 빠졌던 적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고 네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나. 항상 바보같이 나는 “네가 이래도 나를 좋아할까?”를 시험하고 있었지. 네 앞에서 일부러 겁쟁이로 굴었던 것 같아. 이런 내 본모습을 본 네가 과연 나를 견딜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지. 그것으로 나는 너를 밀어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영장에서는 너를 찾게 되었어. 수십 개, 수백 개의 반복되는 수영장에 빠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이곳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너를 찾게 되었지. 그리고 나는 너를 찾았어. 결국 널 끌어안으며 말했지. 네가 속삭였던 말을 말이야. 그러곤 깨어났어. 자각이란 참 구원 같으면서도 악몽이고 거짓말이야. 사실 나는 수영장을 무서워하지 않아. 더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었거든.
세 번째 꿈은 학교였어. 딱 좋은 새벽 시간이었지. 학교에서 너는 잠이 들어 있었어.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어. 얼굴이며 키며 덩치며. 우린 같은 게 없었지. 그게 무서웠어. 내가 너를 나쁜 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자기는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있대. 근데 그게 그저 청소년의 자살 유행과도 같대. 내가 어떤 것 때문에 죽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금단의 영역이 더 끌리는 법이야.” 알고 있었어. 그래,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른들 속에서 그 틀에 갇히게 돼. 보통은 그런 걸 단속하라고 학교가 있는 거잖아. 나도 이해해. 이해하고 있지만. 이제 와서 부정은 절대 할 수가 없었어. “어른이 되면 다 나아질 거야.” 학교에서 쓰러졌던 날, 병원에서 들은 말이야. 그리고 아직도 그걸 머릿속에 되새겨. 나는 네 볼에 살짝 입술을 대었어. 너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 그러곤 다시 생각했지. 마음이란 끝내 어른이 되어서도 그 흔적을 남긴다는 걸.
마지막 네 번째 꿈은 벚꽃이었어. 우리는 약속을 하나 했지. 우리가 사랑했던 그 추억을 두루뭉술하게 남기지 말자고. 우리가 사랑했다는 걸 부정하지 말자고. 비록 어리숙한 사랑이지만, 결국 그것도 사랑이었어. 청소년인 우리가 어른이 되기 전 가져갈 수 있는 것. 꿈속에서 깬 후 가져갈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이었어. 사랑은 결국 흔적으로 남고, 느낌으로 마지막까지 흘러가지. 사실 악몽은 생각보다 더 현실적이야. 어른이 될수록 무서워하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 되지. 현실이란 참 부정하고 싶어. 인생에서 변치 않을 것, 변할 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지. 그게 내가 가장 현실에서 무서워하는 거야. “우리의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두루뭉술한 질문이네. 근데 그건 이미 이루어져 있더라.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었어. 우리가 못 본 사이에 놀랍게도 세상은 변해가지. 변치 않을 것보다 변할 것이 더 많을 거라는 걸 알아. 우리는 결국 변하고 말 테지. 우리가 고수한 신념을 가지고 말이야. 세상 전부가 우리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변치 않을 신념은 언제나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 또한 존중하며 살아가겠지. 그것이 인간의 도리인걸. 그럴 수 없겠지만, 난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 내가 너의 전부를 사랑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야. 처음에 말했던 벚꽃을 기억해? 그게 내 꿈이야. 두루뭉술한 나의 꿈. 이룰 수 있을지 모르는 꿈.
맞아. 마지막 꿈은 꿈이 아니야. 나의 이루고자 하는 꿈이지. 꿈은 머릿속에서 잠깐 스쳐 가는 환상. 무의식에서 무심코 떠오르고 마는 것. 꿈은 말이야 그런 것과도 같았어. 무의식에서 바라고 마는 것. 꿈과 꿈이 같은 이유를 알 것 같아. 진정한 마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흔적을 남겨. 꿈 또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지. 마치 벚꽃처럼 말이야. 벚꽃은 사라지지만, 그 흔적을 남겨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지. 난 꿈이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진정한 마음을 찾기 위해 주는 힌트. 너 또한 꿈의 흔적을 찾았으면 해. 꿈은 뭉뚱그려도, 두루뭉술해도 괜찮은 존재니까. 항상 흔적을 따라가는 게 더 까다롭고 짜증 나지만, 그 일련의 과정에서 결국 우리를 사랑하고 자각하게 했으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한 이름 모를 신이시여, 내 꿈에 부디 흔적을 남겨 주시길!’이라고 하면 조금 책임감 없어 보이려나? (농담이야) 언젠가 네 꿈도 듣고 싶어. 악몽도 좋아. 악몽도 결국 내게 흔적을 준 꿈이니까. 언젠가 다음 해에 벚꽃을 보러 가면 이 이야기를 해줄게. 흔적을 따라 너를 붙잡은 날을 후회하지 않아. 그러므로, 마지막에 내가 너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단어는 “벚꽃 악몽 흔적”일 거야. 정말로. 사랑해.
[심사위원 작품평]
‘벚꽃’으로 시작해 ‘흔적’으로 마무리하는 짜임새 있는 글입니다. 보암님은 이 글에서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반영한 악몽이 남긴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는 흔적으로서 포용하고, 나아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의 이정표로 삼습니다. 한때는 두루뭉술해서 싫어했던 꿈이 결국엔 진정한 마음의 표현임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신 보암님. 보암님이 이루고자 하는 그 꿈이 실현되길 바랍니다.
심사위원 오세진 |
올해 벚꽃은 그렇게 빨리 지더라. 봄비에 꽃잎은 떨어지고, 멀리 떨어진 교실 창문에도 벚꽃잎이 가득하더라. 그런데도 비는 더 거세지고, 천둥은 땅이 꺼져라 외쳤어. 봄의 심장이 일주일 만에 휩쓸려 사라졌지.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 순간이 얼마나 덧없었던지,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영원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영원이라는 건 없겠지만.
내가 생각해 봤는데, 벚꽃은 꿈과도 같은 것 같아. 사람들은 벚꽃이 지면 그걸 추억으로 기억하지. 이따금 사진으로 “그래, 즐거웠었지” 하면서 말이야. 그러곤 유난히 그해에 벚꽃이 빨리 졌다고들 해. 사실은 말이야 저번 해에도, 그 저번 해에도. 벚꽃은 일주일만 필 수 있는데 말이야. 우리는 추억을 항상 뭉뚱그려 떠올리곤 해. 사실 꿈도 똑같아. 꿈도 두루뭉술하잖아. 그래서 난 꿈을 되게 싫어했어. 괜히 느낌만 남아서 있지도 않은 전 여친인 양 떠올리게 되잖아. 그래, 맞아 마치 흔적처럼. 정말 ‘그립다’와 ‘잊은 것을 떠올리고 싶다’는 다를 텐데 말이야.
그거 알아? 너는 내 꿈에 네 번 나왔어. 사실은 꿈꾸고 나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해 낸 건 딱 네 개야. (사실은 수십 개의 네가 나오는 꿈을 꾸었지만, 꿈이라는 이름답게 잊어버렸지 뭐야) 왜 그런지 알아? 전부 악몽이었거든. 이게 무슨 말을 뜻하는지 알아? 꿈속의 너는 내 마음에 네 개의 흔적을 주었다는 말이야. (네가 전 여친이 된다는 말은 아니야) 이제부터 그 꿈의 흔적에 대해 알려줄게.
첫 번째 꿈은 장작불이었어.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을 마주 보고 우리는 앉아 있었지. 내가 말했었나? 나는 겁이 많아서 불을 무서워한다고. 실습 시간에 알코올램프를 쓰다 새끼손가락에 화상을 입었거든. 내가 그땐 겁이 없었지. 근데 그 후부터 불이 되게 무서워지더라. 그렇게 선생님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도, 나는 항상 큰코다친 후에 두려움을 알게 되지. 단 한 개만 먹을 수 있는 독버섯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나는 그 두려워하는 불을 떨떠름하게 보고 있었어. 꿈속이어도 그때처럼 뜨겁게 느껴졌지. 그때, 네가 입을 열었어. 꿈속의 너는 말이야, 내 귓가에 나를 좋아한다고 속삭였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꿈에서 깨어났어. 내가 불 속으로 뛰어들었거든. 사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꿈속의 너는 결국 무의식 속의 나일 뿐이었고.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어. 믿고 싶지도 않았지. 내 마음에 생겨난 첫 번째 흔적이었어.
두 번째 꿈은 수영장이었어. 물이 너무 깊어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곳이었지. 이건 네가 알고 있을 것 같아. 수영장에서 물에 빠졌던 적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고 네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나. 항상 바보같이 나는 “네가 이래도 나를 좋아할까?”를 시험하고 있었지. 네 앞에서 일부러 겁쟁이로 굴었던 것 같아. 이런 내 본모습을 본 네가 과연 나를 견딜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지. 그것으로 나는 너를 밀어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영장에서는 너를 찾게 되었어. 수십 개, 수백 개의 반복되는 수영장에 빠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이곳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너를 찾게 되었지. 그리고 나는 너를 찾았어. 결국 널 끌어안으며 말했지. 네가 속삭였던 말을 말이야. 그러곤 깨어났어. 자각이란 참 구원 같으면서도 악몽이고 거짓말이야. 사실 나는 수영장을 무서워하지 않아. 더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었거든.
세 번째 꿈은 학교였어. 딱 좋은 새벽 시간이었지. 학교에서 너는 잠이 들어 있었어.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어. 얼굴이며 키며 덩치며. 우린 같은 게 없었지. 그게 무서웠어. 내가 너를 나쁜 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자기는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있대. 근데 그게 그저 청소년의 자살 유행과도 같대. 내가 어떤 것 때문에 죽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금단의 영역이 더 끌리는 법이야.” 알고 있었어. 그래,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른들 속에서 그 틀에 갇히게 돼. 보통은 그런 걸 단속하라고 학교가 있는 거잖아. 나도 이해해. 이해하고 있지만. 이제 와서 부정은 절대 할 수가 없었어. “어른이 되면 다 나아질 거야.” 학교에서 쓰러졌던 날, 병원에서 들은 말이야. 그리고 아직도 그걸 머릿속에 되새겨. 나는 네 볼에 살짝 입술을 대었어. 너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 그러곤 다시 생각했지. 마음이란 끝내 어른이 되어서도 그 흔적을 남긴다는 걸.
마지막 네 번째 꿈은 벚꽃이었어. 우리는 약속을 하나 했지. 우리가 사랑했던 그 추억을 두루뭉술하게 남기지 말자고. 우리가 사랑했다는 걸 부정하지 말자고. 비록 어리숙한 사랑이지만, 결국 그것도 사랑이었어. 청소년인 우리가 어른이 되기 전 가져갈 수 있는 것. 꿈속에서 깬 후 가져갈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이었어. 사랑은 결국 흔적으로 남고, 느낌으로 마지막까지 흘러가지. 사실 악몽은 생각보다 더 현실적이야. 어른이 될수록 무서워하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 되지. 현실이란 참 부정하고 싶어. 인생에서 변치 않을 것, 변할 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지. 그게 내가 가장 현실에서 무서워하는 거야. “우리의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두루뭉술한 질문이네. 근데 그건 이미 이루어져 있더라.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었어. 우리가 못 본 사이에 놀랍게도 세상은 변해가지. 변치 않을 것보다 변할 것이 더 많을 거라는 걸 알아. 우리는 결국 변하고 말 테지. 우리가 고수한 신념을 가지고 말이야. 세상 전부가 우리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변치 않을 신념은 언제나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 또한 존중하며 살아가겠지. 그것이 인간의 도리인걸. 그럴 수 없겠지만, 난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 내가 너의 전부를 사랑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야. 처음에 말했던 벚꽃을 기억해? 그게 내 꿈이야. 두루뭉술한 나의 꿈. 이룰 수 있을지 모르는 꿈.
맞아. 마지막 꿈은 꿈이 아니야. 나의 이루고자 하는 꿈이지. 꿈은 머릿속에서 잠깐 스쳐 가는 환상. 무의식에서 무심코 떠오르고 마는 것. 꿈은 말이야 그런 것과도 같았어. 무의식에서 바라고 마는 것. 꿈과 꿈이 같은 이유를 알 것 같아. 진정한 마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흔적을 남겨. 꿈 또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지. 마치 벚꽃처럼 말이야. 벚꽃은 사라지지만, 그 흔적을 남겨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지. 난 꿈이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진정한 마음을 찾기 위해 주는 힌트. 너 또한 꿈의 흔적을 찾았으면 해. 꿈은 뭉뚱그려도, 두루뭉술해도 괜찮은 존재니까. 항상 흔적을 따라가는 게 더 까다롭고 짜증 나지만, 그 일련의 과정에서 결국 우리를 사랑하고 자각하게 했으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한 이름 모를 신이시여, 내 꿈에 부디 흔적을 남겨 주시길!’이라고 하면 조금 책임감 없어 보이려나? (농담이야) 언젠가 네 꿈도 듣고 싶어. 악몽도 좋아. 악몽도 결국 내게 흔적을 준 꿈이니까. 언젠가 다음 해에 벚꽃을 보러 가면 이 이야기를 해줄게. 흔적을 따라 너를 붙잡은 날을 후회하지 않아. 그러므로, 마지막에 내가 너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단어는 “벚꽃 악몽 흔적”일 거야. 정말로. 사랑해.
[심사위원 작품평]
‘벚꽃’으로 시작해 ‘흔적’으로 마무리하는 짜임새 있는 글입니다. 보암님은 이 글에서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반영한 악몽이 남긴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는 흔적으로서 포용하고, 나아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의 이정표로 삼습니다. 한때는 두루뭉술해서 싫어했던 꿈이 결국엔 진정한 마음의 표현임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신 보암님. 보암님이 이루고자 하는 그 꿈이 실현되길 바랍니다.
심사위원 오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