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띵동상연습에서 꿈까지 언니가 나에게 미친 영향 / 릿, 2008년생

  글 쓰는 것을 연습했다. 전하지 못했지만.

  말하는 것을 연습했다. 내뱉지 못했지만.


  작년 띵동 퀴어청소년 무지개백일장을 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오히려 두려워졌다. 작년 주제는 ‘내 책상 서랍 속의 ○○’과 ‘○○이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나는 언니가 나에게 알려준 정체성에 대해 쓰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 본 적이 없었기에, 문득 두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지니 완벽주의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꽁꽁 싸매어놓은 나의 완벽주의.


  그래서 올해는 어떤 주제가 나오든 제출해 보고 싶어서 나의 블로그에 언니에 대한 감정들을 써 내려갔다. 일종의 연습이었다. 이런 나의 작은 글들이 모여, 언니에 대한 감정의 형태를 형성해 나갔다. 글을 쓰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내뱉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언니에 대한 감정은 커다랬지만, 어휘력은 얄팍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 어려웠다. 언니와 대화할 때 어떤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지 일기장에 쓰기 시작했다. 나의 일기장을 보면 정말 사소한 주제까지 다 써놓아서 우스울 정도였다. 이렇게 써놓은 이야기 주제들은 쌓여갔지만 지워가지는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원체 대화를 어려워했기에. 그렇게 언니와 대화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말을 내뱉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연습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기를 쓰며 대화하는 연습을 해도 늘 하는 말과 행동은 똑같았다. ‘점심시간에 밥 빨리 먹고 급식실 앞에서 기다리기, 오늘 오전에 뭐 했는지 묻고 오후에 뭐 할 건지 묻기’. 이 틀은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언니와 사소한 주제로 말하는 것이 좋았기도 했지만 괜히 언니가 내가 생각해 놓은 이야기 주제를 싫어할까 봐 두려웠다. 언니와 내가 알고 지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물어볼걸, 이란 생각도 든다.


  언니는 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할 일 없는 중3들을 위해 전환기를 운영했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중2에게는 공부를 시킬 뿐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의 나이가 미워졌다. 내가 한 살만 많았더라면. 아니면 아예 아쉬움도 남지 않게 나이 차이가 더 났더라면.


  전환기 프로그램의 반절가량이 학교 밖에서 이루어졌기에 나는 그저 07년생들을, 언니와 친한 선배들을, 밖에서 같이 활동할 그 이름 모를 선배들을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쉬워하며 날린 시간이 며칠이나 됐다고, 시험기간이 다가왔다.


  시험을 치고 나니, 학교에 있는 언니와 놀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언니가 전환기 프로그램을 나가면 그것마저 소용없었지만. 그렇게 언니가 없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중2의 나는 한창 뜨개질에 빠져 있을 때라 졸업을 한 달 정도 남긴 언니를 위해 꽃다발을 만들어보기로 다짐했다. 언니를 알게 된 후 시작된 두 번째 연습이었다.


  대화하는 연습은 거울 앞에서 할 말을 생각하고 내뱉으면 끝났지만, 두 번째 연습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들을 듣던 나인데, 뜨개질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상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나도 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졸업식을 빨리 하는 학교가 야속했다. 결국 그렇게 2주를 연습했을까. 졸업식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 되었다. 이제는 슬슬 뭐라도 나와야 했는데, 조급함만 가득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기초적인 뜨개질마저 꼬여갔다.


  결국 꽃다발이라기에는 조잡한 무언가가 나와서 그냥 언니에게 “언니 인형 좋아해? 편지는 어때?”라며 물어봤다. 왜 묻냐는 표정으로 둘 다 좋다고 답을 해주는 언니에게 꽃다발은 어떠냐니까 고민을 하더라. 고민을 하는 언니가 부정의 대답을 할까 봐 그냥 졸업하니까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며 꽃다발을 연습했다는 말은 삼켰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기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나의 세 번째 연습이 되었다. 살면서 편지를 쓴 경험이라고는 어버이날의 형식적인 편지 쓰기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가 편지를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시작된 글쓰기였다. 편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어떤 문장이 들어가면 좋은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4일을 고민했는데도 어렵게 느껴지기만 해서 언니를 모르고, 편지를 잘 쓰는 내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쓰고 싶은 내용을 빈 종이에 한번 써보고, 순서를 정하고 쓰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진심이 담겨 있으면 상대도 좋아할 거야”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진심을 담으라는 조언이 나를 얽매고 있던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후 해본 생각이지만 나는 언니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쓰고 싶은 내용은 세 가지가 있었다. 언니의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과 앞으로를 응원한다는 말, 언니가 편할 때 연락을 주면 기쁠 거 같다는 말. 나의 마음을 담기에는 언니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미 장난스레 언니가 가장 좋다고 해보았지만 난처한 언니 표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편지에는 작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종전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는지 친구의 조언을 듣고 나니 오히려 쓰기 수월해졌다. 결국 내가 고민했던 점은 ‘진심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담을 수 있는지’였기 때문에. 물론 한 번에 마음에 드는 편지가 나오지는 않아서 세 통 정도 작성해봤던 것 같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번째 편지를 인형과 함께 언니에게 전해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졸업 선물을 포장하는 영상을 찍어놔서 가끔 그 영상을 보며 언니를 추억하게 된다.


  방학이 되자 언니를 볼 핑계조차 사라졌다. 정말 슬프게도 언니는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하며, 입학을 하고 너무 바빠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언니,

 사실 언니 집이랑 내 집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 1킬로미터 정도 거리? 그리고 아직도 가끔 언니와 한 대화를 떠올리고 졸업 선물을 포장하는 영상을 보며 언니를 추억하곤 해.

  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내가 언니와 친해지려고 한 노력 덕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고, 뜨개질을 취미로 삼게 되었고, 이후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언니가 나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

  마지막으로, 눈치를 챘을진 모르겠지만 내 첫사랑은 언니야.



말하는 것을 연습했다. 내뱉을 수 있었다.

글 쓰는 것을 연습했다. 전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작품평] 


<연습에서 꿈까지 언니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누군가에게 가닿기 위해 시작했던 조심스러운 ‘연습’들이 결국 자신을 긍정하는 힘으로 확장된 경험을 담백하게 그려낸 글입니다. 한 인연은 멀어졌을지라도, 작고 실질적인 노력의 시간 덕분에 릿 님은 스스로를 한층 마음에 들어 하게 되었습니다. “전하지 못했다”라는 서두의 망설임이 글의 끝에 이르러 “전할 수 있었다”라는 확신으로 바뀌고, 작년에는 두려움 탓에 주저했던 백일장에 올해는 이렇게 글을 내보이게 되었듯이, 용기를 쥐여 주는 다양한 연습의 시간들이 앞으로도 릿 님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기를 바랍니다. 


심사위원  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