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이 말을 할까, 말하지 말까.” 그렇게 고민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어떤 상황인지,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항상 똑같은 말을 고민한다.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과, 하다못해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도 고민하는 말은 늘 같은 문장이었다.
“나 게이야.”
이 말은 나에겐 빛이자 어둠과 같다. 난 게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실이라서 조금 더 솔직한 내가 되는 것 같은 주문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를 보는 눈, 벌려지려는 입, 알 수 없는 표정, 뜨거운 탄성 하나하나가 상상이 된다. 당황했나? 생각도 못했을까?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까? 이런 생각에 난 그 문장을 삼킨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숨기고 싶은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망설이게 되는 걸까? 그러곤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다는 합리화를 하곤 한다. 나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보여지는 걸 걱정한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사실이 대수롭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그 흔적들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공주 드레스가 좋았다. 친구들이 입고 온 드레스를 부러워했고, 집에서는 이불과 천을 둘러 공주 옷을 흉내 내곤 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디즈니 공주들을 좋아했기에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공주들을 수없이 그렸고, 그 그림 속에는 언제나 나의 상상과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드레스, 머리카락, 손짓, 표정들이 전부 나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졌고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 내가 왜 남자를 찾았는지, 아니 사실 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를 찾게 되었고, 내 손은 게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내가 게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남자를 보면서 좋아했고 점점 내가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나의 빈자리들이 채워지는 느낌. 아니 그냥 도파민이 채워지는 거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게이라는 것을 몰랐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다 중학교 1학년, 처음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서 기뻤고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행복했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되고 점점 외모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반 남자애. 남중이었으니 남자밖에 없었겠지만, 난 유일하게 그 애가 신경이 쓰였다.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잘생긴 애.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는데 점점 설명할 수 없게 마음이 커져갔다. 그렇지만 우린 친하지 않았고 그저 같은 반에, 몇 마디 말만 나눈 것이 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얼굴이 잘생겨서 좋았던 것 같다. 그동안 그저 그런 남자만 보다가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다 보니 말도 못 걸 만큼 어버버거렸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관심이 없는 척했다. 뭔가를 챙겨줄 때도 다른 애들도 같이 해주면서 챙겨주고, 급식 당번일 때도 밥이나 반찬을 더 주려고 하고. 하지만 그 애는 이성애자였고 내가 다가가긴커녕 바라볼 수도 없을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 짝사랑은 1학년과 함께 끝이 나나 했지만 2학년이 돼서도 그 애를 좋아했다. 하지만 다른 반에, 이젠 아예 나를 알릴 기회도 없으니 그저 멀리서 보기만 했다. 집 가는 방향이 겹치는 곳이 있어서 항상 그 애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걸을 때도 그 애한테만 온 신경이 향했었다.
그렇게 짝사랑을 지속하다, 어느 날 ‘하트 스토퍼’라는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그 전에 한 번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어서 그저 호기심에 보게 되었는데 보면서 점점 뭔가가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난 그동안 게이라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 마음은 뭘까?” 하고 항상 궁금해했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닉 넬슨’이라는 바이 캐릭터를 보고 “아, 난 바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라는 생각은 못 했었다. 아니, 안 했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정말 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게이라고 완벽히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여자에 관심이 없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엔 남자들밖에 없었고, 보던 야한 동영상들도 전부 게이 야동이었다.
그렇게 점점 “내가 게이일까?”라고 생각하다가 3학년이 되면서 전부 인정했다. 그건 내 두 번째 짝사랑 남자애를 만나면서다. 그 애는 키도 크고 인기도 많고 연예인을 왜 안 하나 싶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난 1학기 때는 그 애를 신경 쓰지 못했다. 새 학기 때엔 친구 사귀기에 급급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학기 때 친구도 많아지고 점점 그 애가 신경 쓰였다. 내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계속 눈이 갔다. 하지만 그땐 첫 번째 짝사랑을 접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2년간의 짝사랑을 끝냈기에 다시 누군가를 짝사랑하기 싫었다.
누군가 그랬었다. 짝사랑은 실패하라고 있는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았다. 난 그 애를 좋아했고, 1학년 때와 다르게 말도 좀 걸고, 하굣길에도 마주치면 몇 마디 나누고, 장난도 치는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말처럼 내 짝사랑은 또 끝이 났었다. 3학년이 끝나면서 졸업을 하기도 했고, 우린 다른 학교로 갔었다. 난 그때 내가 게이란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게이란 것을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부정하거나 혼돈의 시간을 겪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나에게 내가 게이란 사실이 큰 혼란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쌓여온 것들이 터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성애자라고, 바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저, 내가 여자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남자만 봐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나는 남자만을 보게 되는 것이었던 거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려 한다. 왜인지는 몰라도 내 운명이 정말 진정한 나를 찾게 도와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고, 내가 찾던 내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머나먼 시간을 건너 나의 길을 찾아낸 것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를 찾았으니 이젠 끝이라 생각했는데 그 뒤엔 커밍아웃이라는 커다란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커다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커밍아웃은 거대한 사건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수많은 작은 순간들의 반복에 가까운 것 같다. 커밍아웃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 중엔 산산이 조각나 다시 붙일 수도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찬란한 하늘처럼 빛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조각이 다 맞지 않는 파편들이어도, 그 찬란한 하늘을 위해서 나는 보여지고 싶다.
아니, 찬란하지 않아도 그저 보여지고 싶다. 이를 위해서 나는 연습한다. 생각보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 너도 보여질 자격이 있단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물론 지금도 망설일 때가 있다. 아직도 "말할까, 말하지 말까."를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고민 끝에 조금씩 입을 연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보여지기 위한 연습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보여주는 작은 연습.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내가 게이라는 것을 밝히는 댓글을 쓰기도 하고, LGBTQ+ 관련 게시물에 하트를 누르고 프로필엔 무지개 깃발 이모티콘을 달기도 한다. 또 최근엔 친구가 그 댓글을 봐 내가 게이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직접 커밍아웃을 할 때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전과 다름없이 나를 대해주는 것을 보고 나의 작은 연습에 보람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서로 마주 보며 “나 사실 게이야.”라는 말을 특별한 고백이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나 취미를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러운 자기소개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꿈꾸기에는 아주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모두가 보여지고, 찾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만약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연습을 해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언젠가는 당신을 찾아줄 테니.
[심사위원 작품평] 꺅꺅이 님의 글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퀴어 청소년의 일상과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입니다.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듯이 정체성을 감추는 법 또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밖에 없는 삶 가운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와 실천이 가진 의미를 드러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꺅꺅이 님이 내민 손을 잡은 퀴어 청소년들이 세상에 드러낼 자신들의 모습, 보여지는 연습을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세상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심사위원 현민 |
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이 말을 할까, 말하지 말까.” 그렇게 고민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어떤 상황인지,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항상 똑같은 말을 고민한다.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과, 하다못해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도 고민하는 말은 늘 같은 문장이었다.
“나 게이야.”
이 말은 나에겐 빛이자 어둠과 같다. 난 게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실이라서 조금 더 솔직한 내가 되는 것 같은 주문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를 보는 눈, 벌려지려는 입, 알 수 없는 표정, 뜨거운 탄성 하나하나가 상상이 된다. 당황했나? 생각도 못했을까?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까? 이런 생각에 난 그 문장을 삼킨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숨기고 싶은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망설이게 되는 걸까? 그러곤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다는 합리화를 하곤 한다. 나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보여지는 걸 걱정한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사실이 대수롭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그 흔적들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공주 드레스가 좋았다. 친구들이 입고 온 드레스를 부러워했고, 집에서는 이불과 천을 둘러 공주 옷을 흉내 내곤 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디즈니 공주들을 좋아했기에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공주들을 수없이 그렸고, 그 그림 속에는 언제나 나의 상상과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드레스, 머리카락, 손짓, 표정들이 전부 나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졌고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 내가 왜 남자를 찾았는지, 아니 사실 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를 찾게 되었고, 내 손은 게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내가 게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남자를 보면서 좋아했고 점점 내가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나의 빈자리들이 채워지는 느낌. 아니 그냥 도파민이 채워지는 거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게이라는 것을 몰랐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다 중학교 1학년, 처음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서 기뻤고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행복했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되고 점점 외모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반 남자애. 남중이었으니 남자밖에 없었겠지만, 난 유일하게 그 애가 신경이 쓰였다.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잘생긴 애.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는데 점점 설명할 수 없게 마음이 커져갔다. 그렇지만 우린 친하지 않았고 그저 같은 반에, 몇 마디 말만 나눈 것이 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얼굴이 잘생겨서 좋았던 것 같다. 그동안 그저 그런 남자만 보다가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다 보니 말도 못 걸 만큼 어버버거렸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관심이 없는 척했다. 뭔가를 챙겨줄 때도 다른 애들도 같이 해주면서 챙겨주고, 급식 당번일 때도 밥이나 반찬을 더 주려고 하고. 하지만 그 애는 이성애자였고 내가 다가가긴커녕 바라볼 수도 없을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 짝사랑은 1학년과 함께 끝이 나나 했지만 2학년이 돼서도 그 애를 좋아했다. 하지만 다른 반에, 이젠 아예 나를 알릴 기회도 없으니 그저 멀리서 보기만 했다. 집 가는 방향이 겹치는 곳이 있어서 항상 그 애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걸을 때도 그 애한테만 온 신경이 향했었다.
그렇게 짝사랑을 지속하다, 어느 날 ‘하트 스토퍼’라는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그 전에 한 번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어서 그저 호기심에 보게 되었는데 보면서 점점 뭔가가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난 그동안 게이라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 마음은 뭘까?” 하고 항상 궁금해했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닉 넬슨’이라는 바이 캐릭터를 보고 “아, 난 바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라는 생각은 못 했었다. 아니, 안 했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정말 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게이라고 완벽히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여자에 관심이 없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엔 남자들밖에 없었고, 보던 야한 동영상들도 전부 게이 야동이었다.
그렇게 점점 “내가 게이일까?”라고 생각하다가 3학년이 되면서 전부 인정했다. 그건 내 두 번째 짝사랑 남자애를 만나면서다. 그 애는 키도 크고 인기도 많고 연예인을 왜 안 하나 싶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난 1학기 때는 그 애를 신경 쓰지 못했다. 새 학기 때엔 친구 사귀기에 급급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학기 때 친구도 많아지고 점점 그 애가 신경 쓰였다. 내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계속 눈이 갔다. 하지만 그땐 첫 번째 짝사랑을 접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2년간의 짝사랑을 끝냈기에 다시 누군가를 짝사랑하기 싫었다.
누군가 그랬었다. 짝사랑은 실패하라고 있는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았다. 난 그 애를 좋아했고, 1학년 때와 다르게 말도 좀 걸고, 하굣길에도 마주치면 몇 마디 나누고, 장난도 치는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말처럼 내 짝사랑은 또 끝이 났었다. 3학년이 끝나면서 졸업을 하기도 했고, 우린 다른 학교로 갔었다. 난 그때 내가 게이란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게이란 것을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부정하거나 혼돈의 시간을 겪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나에게 내가 게이란 사실이 큰 혼란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쌓여온 것들이 터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성애자라고, 바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저, 내가 여자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남자만 봐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나는 남자만을 보게 되는 것이었던 거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려 한다. 왜인지는 몰라도 내 운명이 정말 진정한 나를 찾게 도와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고, 내가 찾던 내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머나먼 시간을 건너 나의 길을 찾아낸 것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를 찾았으니 이젠 끝이라 생각했는데 그 뒤엔 커밍아웃이라는 커다란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커다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커밍아웃은 거대한 사건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수많은 작은 순간들의 반복에 가까운 것 같다. 커밍아웃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 중엔 산산이 조각나 다시 붙일 수도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찬란한 하늘처럼 빛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조각이 다 맞지 않는 파편들이어도, 그 찬란한 하늘을 위해서 나는 보여지고 싶다.
아니, 찬란하지 않아도 그저 보여지고 싶다. 이를 위해서 나는 연습한다. 생각보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 너도 보여질 자격이 있단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물론 지금도 망설일 때가 있다. 아직도 "말할까, 말하지 말까."를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고민 끝에 조금씩 입을 연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보여지기 위한 연습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보여주는 작은 연습.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내가 게이라는 것을 밝히는 댓글을 쓰기도 하고, LGBTQ+ 관련 게시물에 하트를 누르고 프로필엔 무지개 깃발 이모티콘을 달기도 한다. 또 최근엔 친구가 그 댓글을 봐 내가 게이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직접 커밍아웃을 할 때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전과 다름없이 나를 대해주는 것을 보고 나의 작은 연습에 보람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서로 마주 보며 “나 사실 게이야.”라는 말을 특별한 고백이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나 취미를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러운 자기소개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꿈꾸기에는 아주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모두가 보여지고, 찾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만약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연습을 해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언젠가는 당신을 찾아줄 테니.
[심사위원 작품평]
꺅꺅이 님의 글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퀴어 청소년의 일상과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입니다.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듯이 정체성을 감추는 법 또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밖에 없는 삶 가운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와 실천이 가진 의미를 드러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꺅꺅이 님이 내민 손을 잡은 퀴어 청소년들이 세상에 드러낼 자신들의 모습, 보여지는 연습을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세상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심사위원 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