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목소리상징검다리를 건너는 연습 / 즤후, 2009년생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돌로 이루어진 징검다리가 내 발밑에 놓여 있었다. 각진 돌의 주변으로 시냇물이 흘렀다. 시선을 뒤쪽으로 향하게 했다. 다른 모양새의 징검다리들을 건너온 모양이었다. 각진 돌, 붉은 돌, 푸른 돌⋯⋯. 나는 다음으로 내가 밟아야 할 것만 같은 돌을 응시했다. 그건 검정, 초록, 하양이 섞인 돌이었다. 처음 보는 오묘한 돌이었지만 그것이 나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는 내가 논바이너리 뉴트로이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실제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시원한 물들의 흐름이 느껴졌다. 다리에 조금씩 튀기는 물방울들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징검다리 위에서 아주 약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것을 봐선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에 있던 나는 입꼬리를 올리지는 않았다. 아주 약간 눈시울을 붉혔다. 현실의 나는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자꾸만 내려가는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말이다. 그때 읽고 있던 소설은 이서수 작가님의 「몸과 무경계 지대」였다. 소설 속에선 자신을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칭할 수 없는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의 속을 따라가며 나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었지만, 그저 여성으로 정체화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안 나는 해방의 눈물을 흘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논바이너리 뉴트로이스로 새롭게 정체화한 후 나는 내 삶을 돌아보았다. 다른 논바이너리들은 모두 발육이나 성별이 특정되는 어떤 것에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랬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다시 그 징검다리 위로 올라갔다. 몸을 뒤로 돌리고 돌을 하나씩 반대로 건너갔다. 푸른 돌은 나의 조울증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조울증은 멍과 같은 푸른색이었기에 푸른 돌로 나타난 게 아닐까 싶었다. 조울증으로 인해 했던 자해와 자퇴, 그리고 자살 시도들. 내 삶에 너무 많은 흉터를 남긴 돌이었다. 

 다음 돌은 붉은색이었다. 그건 자해의 흔적들이었다. 내 몸에는 아직도 많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와 싸웠을 때, 혼란스러울 때, 우울할 때. 모든 순간에 칼을 들었고 그건 나에게 흔적을 남겼다. 

 다음 돌은 여러 색이 혼합되어 있었다. 나는 단번에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정체화였던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퀴어와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퀴어라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게 왜라는 질문을 해, 기독교 지인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왔다. 17살이 되기 전까진 그저 주변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17살 여름, 나에게도 정체화의 기회가 왔다. 9년을 알아 왔던 여자애(그 애가 직접 자신은 여자라고 말해주었다.)를 짝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드라마 <하트 스토퍼> 속 일화처럼 그 애가 내 팔에 펜을 잘못 그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그 애는 그 위에 점을 두 개 찍어 스마일을 만들어주었다. 그 작은 미소가 날 며칠 동안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그 애는 퀴어를 혐오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뒤로 몇 년간 나는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여성이라고 정체화했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과 남성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돌은 각진 돌이었다. 그건 별 의미가 없었다. 그저 내 삶에서 힘들었던 시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돌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오는 기억 구슬처럼 즐거웠던 기억이나 화났던 기억을 담고 있었다. 내가 내 신체에 불쾌감을 느꼈거나 성별에 불쾌감을 느꼈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뉴트로이스를 나타내는 돌로 급하게 돌아갔다. 내가 정말 진정한 뉴트로이스가 맞는 걸까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논바이너리에 대한 만화, 인터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보았다. 하지만 뉴트로이스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대다수였다. 그때는 내가 논바이너리가 아닌 걸까, 뉴트로이스라고 섣불리 말했다가 아니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을 안고 끙끙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여성에도, 남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굳이 여성과 남성의 범주에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그건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생각들을 하며 일상생활을 했다. 

 그렇게 의심의 시간을 보냈다. 계속해서 나를 의심했다. 그건 조울증을 앓는 것보다도 힘든 시간이었다. 조울증은 약을 먹을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 상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누군가에게 섣불리 상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정리해야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다시 한번 깨달음이 찾아왔다. 처음 나를 뉴트로이스라고 정체화했던 그때처럼, 아주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뉴트로이스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치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뉴트로이스라면 그게 맞다는 확신. 그것은 마치 의심의 시간을 견뎌낸 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그제야 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에게는 나로서 살아갈 아주 작은 연습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삶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작은 발걸음 같은 것이니까. 걸음걸음을 내딛는 그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나는 또다시 작은 걸음을 내디뎠다. 검정과 초록, 하양이 뒤섞인 돌 위에서 환하게 웃었다. 내 앞에 펼쳐질 또 다른 돌들이 기대돼서, 그 돌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삶을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논바이너리 뉴트로이스로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었다.



[심사위원 작품평] 


‘나’라는 ‘흐름’ 위에 놓인 다채로운 돌을 탐구하는 일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서술해가는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연습이 이리로도 저리로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즤후님의 이야기에 힘입어 또 많은 ‘연습생’들이 자신만의 크고 작은 돌로 다리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심사위원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