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목소리상이브와 이브 / 구, 2008년생

“야. 나중에 사귈 사람 없으면, 졸업하기 전에 우리 둘이 잠깐만 사귀자.”

 그렇게 말하는 네 표정은 퍽 진심인 것도 같았지만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장난스럽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우리는 냉동 블루베리가 들어간 빙수를 퍼먹었다. 날이 더워지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기 싫어하는 내게 엄마는 고등학교가 ‘어른 연습’이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시험을 보는 것, 싫어하는 아이와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들이 모두 나를 더 나은 어른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설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가 그토록 사랑하는 성경 속 아담과 이브를 떠올렸다. 에덴은 그들의 연습이었다. 그렇다면 내 에덴은 미성년일 터였다.

 너는 내가 감정에 휩쓸려 커밍아웃한 몇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우리가 친해진 건 그 이후인 2학년 2학기 무렵이었고, 그건 3년 내내 반이 바뀌지 않는 우리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이고 꽉 막힌 기독교 사립 여자 고등) 학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꽤 늦은 시점이었다. 우린 네가 방학 때 머물렀던 이국의 땅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을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한 학년 위의 타과 선배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였다.

 우리는 정확한 시점을 떠올릴 수 없는 어느 순간 급격히, 그러니까 이따금 장난을 치고 다른 친구들 사이에 끼어 저녁을 먹던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고, 제법 많은 이야기를 했다. 너는 내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호모포비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각자의 글을 쓰던 날, 너는 내게 ‘더 발룬티어스’의 ‘Radio’를 추천해줬다.


 My mama told me to go to church every Sunday. She believes in God, but I'm live in a hell…….


 나는 사랑하는 나의 호모포비아 부모님을 팔아먹은 대가로 네가 버섯을 싫어하고 젤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부모님과의 사이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따금 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를 마주치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넌 인형을 좋아하는 그 개에게 네 책가방에 가득 달린 작은 인형들 중 하나를 떼어 주곤 한다는 것도.

 학교의 연례행사 예배가 끝난 건 열 시가 넘어서였다. 부모님의 차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배웅하고 나는 담배를 피운다는 너를 따라갔다. 우리는 학교 뒤쪽의 도로 경계석에 앉았다. (나중에 들은 네 말에 의하면 너는 의자보다 바닥에 앉는 걸 더 좋아했다. 그게 당시 하나뿐이던 의자에 나를 앉히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네게서 말보로 레드 하나를 받아들었다. 네가 불을 붙여줬고, 나는 곧 가끔 피우던 과일 향 멘솔과는 사뭇 다른 타격감에 콜록거렸다.

 “너는 담배 향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피우냐. 끊어,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네가 핀잔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네 한마디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처음 담배를 물었던 날, 나는 두 번 다시 말보로 레드를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열아홉의 나, 미성년을 고작 육 개월 남긴 나는 (비록 조금 켁켁대긴 했어도) 네가 건넨 말보로의 잔향을 역하게 느끼지 않았고, 그건 생각만큼 멋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담배를 끊지 않는 건 너와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좋아서였다. 너무나 어리게도 난 우리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좋았고, 십칠 층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카페의 옥상에서 타는 담배를 든 채 지는 해를 배경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그 순간만이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솔직함이 좋았다. 말보로의 잔향이 학교 매점에서 파는 보리차 음료수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생각할 만큼 담배 특유의 맛에 무뎌졌음에도 담배를 끊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거였다. 그래서 나는 네가 줄담배를 태우는 동안 조용히 생크림 케이크를 꺼내 먹었다. 네가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나는 우리가 등졌던 화분 뒤의 벤치에 앉자고 제안했다. 짧은 교복 치마가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너는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 소유의 벤치로 옮겨 앉았다. 초여름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수험생의 분수에 걸맞지 않게 아주아주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시간이 이대로 붙잡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언제까지나 이 모든 걸 연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잠자코 바라봤다. 봄비에 떨어진 벚꽃들을 아쉬워하던 게 2주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잎들은 벌써 무성한 초록빛을 띠었다. 우리의 미성년은 벚꽃보다도 유효 기간이 짧을 거였다. 반년,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네가 불쑥 말했다.

 “우리 키스 한 번 해 볼래?”

 뭐라고?

 “어?”

 “싫으면 말고.”

 나는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열한 시가 다 되어갔다. 너는 태연하게 택시를 불러야겠다고 했다.

 “진심이야?”

 “싫으면 싫다고 해, 그냥.”

 네가 장난스레 짜증을 냈다. 택시 호출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많이, 아주 많이 고민했다. 너는 싫으면 거절하라는 말을 세 번쯤 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우리 사이의 무게부터 오지도 않은 반년간의 시간까지 이것저것을 재 보았다. 그리고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려고 애쓰며 답했다.

 “나는…… 좋아.”

 허술한 계산 끝에 나는 승낙했다. 그래, 하고 네가 대답했고, 나는 이것저것 변명하기 시작했다.

 “근데 나 키스 처음 해 보는데. 배드키서일지도 모르는데. 진짜 못할 텐데.”

 “나는 방금 담배 피웠거든? 워스트 키스 에버야.”

 잔뜩 긴장한 와중에도 네 한마디가 웃겨 나는 낄낄거렸다.

 “눈 감고 있어.”

 “뜨면 안 되는 거야?”

 “어, 안 돼. 나만 뜰 거야.”

 그런 게 어디 있담. 하지만 나는 순순히 눈을 감고 네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눈을 감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총 세 번 키스했다. 체감 십오 초 정도가 지난 뒤 네가 먼저 몸을 떼었다. 눈앞에 아파트의 창문들이 다시 나타났을 때, 난 ‘근데 너 진짜 못한다’라고 놀리듯 말하는 네 목소리를 다시는 이전과 같이 들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날 우리는 끝내 택시를 잡지 못했다.

 너와 반대 방향에서 버스에 올랐다. 이어폰에서 ‘Radio’가 재생되고 있었다. 내 첫 키스의 주제곡은 ‘트와이스’의 ‘What is love’도 ‘앤 마리’의 ‘2002’도 아닌 ‘더 발룬티어스’의 ‘Radio’였다. 일렉기타 반주 위로 나른한 백예린의 목소리가 노래했다. 


She believes in God, but I'm live in a hell.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여기는 우리 엄마는 신을 믿었고, 내 첫 키스 상대는 여자였다. 나는 그녀의 지옥에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한 정거장을 지나서야 너와 키스한 그 벤치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가 올라타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내렸다. 교통 카드가 없는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제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모든 연습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버스의 파란색과 차들의 경적, 불이 켜진 빌딩의 창문이 소름 끼칠 만큼 선명하게 다가왔다. 서울의 모든 색깔들이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내 첫 키스는 그 어떤 것보다도 사실이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연습은 없으리란 걸. 나를 둘러싼 세계가 세 배쯤 밝아져 내 눈을 아프게 하리란 걸.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되는 엄마의 성경과 달리, 내 성경은 입맞추는 이브와 이브로 시작되었다. 너는 내 이브였다. 내가 가진 첫 번째 진짜였다.



[심사위원 작품평] 


심사위원들은 구 님이 미성년의 시간을 ‘연습’이라는 단어로 붙들어 낸 시선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어른 연습’이라던 엄마의 말에서 성경 속 에덴마저 ‘그들만의 연습’으로 다시 읽어낸 시선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언제까지나 연습으로 남겨두고 싶다던 간절한 마음은, 첫 입맞춤 뒤 ‘이제 더 이상의 연습은 없으리란 걸’ 인정하는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구 님이 써 내려가는 이브와 이브의 성경 속에서, 그 연습은 끝이 아니라 ‘진짜’의 시작이 됩니다.


심사위원 다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