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인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어?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 Y랑 싸웠다고 울면서 말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잖아, 걔가 내 첫사랑이야. ‘사랑’보단 ‘처음’에 초점을 맞춘 ‘첫’ 사랑 있잖아. Y가 그런 애였어. 엄만 항상 집에 돌아온 우리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내가 Y랑 처음으로 뽀뽀하고 돌아온 초등학교 5학년 그날은 엄마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어.
‘원래’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나인 걸 설명해야 할 때 사용하기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미취학 아동인 시절엔 주말에만 엄마를 만날 수 있었으니, 엄만 잘 몰랐을까? 엄마, 나는 원래 가슴을 뚫고 나오는 내 감정을 숨긴 적이 없어. 행복하거나, 지루하거나, 슬프거나, 외로운 표정 하나도 숨기지 못해. 어쩌면 숨기는 법을 모를지도 몰라. 엄마 눈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Y의 마음을 확인한 그날 느낀 수줍음과 설레는 감정은 숨기지 못했을 것 같아. 엄마도 그날 내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해?
중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때, 내가 처음으로 교회 가는 날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 성탄절이니까 당연히 예수님 생신 축하하러 교회에 가야 한다던 내 평생의 구속을 끊어버린 날이기도 하지.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거창하게 보이는데, 사실 엄마도 알잖아. 내가 평생 예배를 빠진 적이 없다는 걸. 평일엔 자기 전에야 겨우 엄마를 볼 수 있던 내게 일요일은 엄마를 잃는 날이었어. 그땐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 한 교회의 집사님, 유년부의 부장 선생님으로만 보였어. 난 그런 익숙하고 낯선 어른과 마주하는 일이 지겨웠던 걸지도 몰라. 엄마, 사실 그날 H랑 데이트하러 갔던 거야. 할아버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두 시간이나 들어야 하는 진부하고 신성한 성탄절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거야. 목사의 조카, 장로의 딸, 권사의 손녀로 살아가야 하는 내 삶을 부정하고 싶었거든. 엄마도 그 마음을 알까?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엄마의 컨트롤 프릭 성향을 무시하고 밤 10시를 넘겨 집에 들어간 날이기도 하지. 엄마가 그때 언니한테 뛰어가서 물어봤다며. 셋째랑 H랑 사귀냐고. 언니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라고 했대. 그럴 리가 있겠냐며. 근데 엄마, 그날 눈치챘잖아. H가 여자를 좋아한단 사실은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날 H를 정신병자라 욕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 잊히질 않는데, 엄마도 그 사실을 기억해서 물어본 거잖아. 근데 엄마,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엄마. 엄마가 그랬잖아. 나중에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라고. 난 요즘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용히 그 사람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지내는 일뿐이야. 엄마는 이런 적이 있었어? 내 사랑을 온 집안 사람들이 경멸하고, 저주하는 경험을 해봤어? 엄마 나는, 그냥 사랑이 하고 싶어.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고, 연애하는 그런 사랑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엄마는 미디어로 성소수자를 보며 저렇게 살다간 혼자 외롭게 죽을 거라고 말했지? 때가 되면 다 자신의 정신병이었음을 깨달을 거라고. 그런데 엄마, 엄마는 우리의 사랑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엄마가 아는 사랑이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 나는 태어나 보니 보수 기독교 집안의 4대 손녀가 됐어. 엄마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예수님을 몰랐다고 고백했잖아. 나도 예수님을 모르겠어.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 상관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과 다르게, 어떤 사랑은 인정조차 받지 못해 정신병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참 모순적이야. 나이 차이가 많은 남녀 간에도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면서, 고작 성별 하나로 사랑이 아니라는 모순을 듣고 자랐음에도 나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려서부터 내 가족들과 멀어질 미래를 준비하며 홀로 속상해하고, 그 나중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엄마 아빠의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어. 그러지 않고서야 예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 몸을 갈아 교회에 헌신하겠어.
나는 매번 악기 앞에 앉을 때마다 너무 많은 어른의 관심을 받아. 모든 성도가 다 보이고, 열 걸음 채 되지 않아 목사님과 닿을 수 있는 그 공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모두가 보이지만 나 홀로 있는 그 공간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아? 나는 그 안에서 나만 두려워하는 싸움을 견디면서도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어.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후회 없이 엄마 아빠와 멀어지고 싶었거든. 엄마, 엄마가 보기엔 내가 왜 매주 드럼 앞에 앉는 것 같아? 내가 드럼 연주를 즐겨서? 어른들께 칭찬받는 게 좋아서? 아냐 엄마. 사실은, 나 드럼 그만 치고 싶어.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아빠의 기대는 점점 자라고 있단 걸 느꼈어. 내가 성장하는 만큼 나의 영적 믿음이 자라길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 그런데 난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만큼의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엄마 아빠의 레즈비언 딸로 살고 싶었어. 하지만 교회는 점점 내 부모의 내면을 보여줬고, 그 결과로 나는 결국 가족과 멀어지는 걸 택하게 됐어. 내 부모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독교인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임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나 봐. 노력한 것들이 때론 기대하는 성과를 보이지 못한단 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내 엄마, 내 아빠니까 기대하고 싶었나 봐. 그게 다 내 욕심이었는데.
미안해, 엄마.
영원히, 엄마의 원조 막내가.
[심사위원 작품평]
원조 막내 님의 글은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을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로 풀어낸 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종교 안에서도 자신의 사랑만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좌절과 슬픔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가는 원조 막내 님의 글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입니다.
심사위원 현민 |
하나님의 자녀인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어?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 Y랑 싸웠다고 울면서 말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잖아, 걔가 내 첫사랑이야. ‘사랑’보단 ‘처음’에 초점을 맞춘 ‘첫’ 사랑 있잖아. Y가 그런 애였어. 엄만 항상 집에 돌아온 우리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내가 Y랑 처음으로 뽀뽀하고 돌아온 초등학교 5학년 그날은 엄마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어.
‘원래’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나인 걸 설명해야 할 때 사용하기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미취학 아동인 시절엔 주말에만 엄마를 만날 수 있었으니, 엄만 잘 몰랐을까? 엄마, 나는 원래 가슴을 뚫고 나오는 내 감정을 숨긴 적이 없어. 행복하거나, 지루하거나, 슬프거나, 외로운 표정 하나도 숨기지 못해. 어쩌면 숨기는 법을 모를지도 몰라. 엄마 눈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Y의 마음을 확인한 그날 느낀 수줍음과 설레는 감정은 숨기지 못했을 것 같아. 엄마도 그날 내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해?
중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때, 내가 처음으로 교회 가는 날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 성탄절이니까 당연히 예수님 생신 축하하러 교회에 가야 한다던 내 평생의 구속을 끊어버린 날이기도 하지.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거창하게 보이는데, 사실 엄마도 알잖아. 내가 평생 예배를 빠진 적이 없다는 걸. 평일엔 자기 전에야 겨우 엄마를 볼 수 있던 내게 일요일은 엄마를 잃는 날이었어. 그땐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 한 교회의 집사님, 유년부의 부장 선생님으로만 보였어. 난 그런 익숙하고 낯선 어른과 마주하는 일이 지겨웠던 걸지도 몰라. 엄마, 사실 그날 H랑 데이트하러 갔던 거야. 할아버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두 시간이나 들어야 하는 진부하고 신성한 성탄절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거야. 목사의 조카, 장로의 딸, 권사의 손녀로 살아가야 하는 내 삶을 부정하고 싶었거든. 엄마도 그 마음을 알까?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엄마의 컨트롤 프릭 성향을 무시하고 밤 10시를 넘겨 집에 들어간 날이기도 하지. 엄마가 그때 언니한테 뛰어가서 물어봤다며. 셋째랑 H랑 사귀냐고. 언니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라고 했대. 그럴 리가 있겠냐며. 근데 엄마, 그날 눈치챘잖아. H가 여자를 좋아한단 사실은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날 H를 정신병자라 욕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 잊히질 않는데, 엄마도 그 사실을 기억해서 물어본 거잖아. 근데 엄마,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엄마. 엄마가 그랬잖아. 나중에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라고. 난 요즘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용히 그 사람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지내는 일뿐이야. 엄마는 이런 적이 있었어? 내 사랑을 온 집안 사람들이 경멸하고, 저주하는 경험을 해봤어? 엄마 나는, 그냥 사랑이 하고 싶어.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고, 연애하는 그런 사랑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엄마는 미디어로 성소수자를 보며 저렇게 살다간 혼자 외롭게 죽을 거라고 말했지? 때가 되면 다 자신의 정신병이었음을 깨달을 거라고. 그런데 엄마, 엄마는 우리의 사랑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엄마가 아는 사랑이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 나는 태어나 보니 보수 기독교 집안의 4대 손녀가 됐어. 엄마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예수님을 몰랐다고 고백했잖아. 나도 예수님을 모르겠어.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 상관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과 다르게, 어떤 사랑은 인정조차 받지 못해 정신병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참 모순적이야. 나이 차이가 많은 남녀 간에도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면서, 고작 성별 하나로 사랑이 아니라는 모순을 듣고 자랐음에도 나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려서부터 내 가족들과 멀어질 미래를 준비하며 홀로 속상해하고, 그 나중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엄마 아빠의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어. 그러지 않고서야 예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 몸을 갈아 교회에 헌신하겠어.
나는 매번 악기 앞에 앉을 때마다 너무 많은 어른의 관심을 받아. 모든 성도가 다 보이고, 열 걸음 채 되지 않아 목사님과 닿을 수 있는 그 공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모두가 보이지만 나 홀로 있는 그 공간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아? 나는 그 안에서 나만 두려워하는 싸움을 견디면서도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어.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후회 없이 엄마 아빠와 멀어지고 싶었거든. 엄마, 엄마가 보기엔 내가 왜 매주 드럼 앞에 앉는 것 같아? 내가 드럼 연주를 즐겨서? 어른들께 칭찬받는 게 좋아서? 아냐 엄마. 사실은, 나 드럼 그만 치고 싶어.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아빠의 기대는 점점 자라고 있단 걸 느꼈어. 내가 성장하는 만큼 나의 영적 믿음이 자라길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 그런데 난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만큼의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엄마 아빠의 레즈비언 딸로 살고 싶었어. 하지만 교회는 점점 내 부모의 내면을 보여줬고, 그 결과로 나는 결국 가족과 멀어지는 걸 택하게 됐어. 내 부모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독교인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임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나 봐. 노력한 것들이 때론 기대하는 성과를 보이지 못한단 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내 엄마, 내 아빠니까 기대하고 싶었나 봐. 그게 다 내 욕심이었는데.
미안해, 엄마.
영원히, 엄마의 원조 막내가.
[심사위원 작품평]
원조 막내 님의 글은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을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로 풀어낸 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종교 안에서도 자신의 사랑만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좌절과 슬픔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가는 원조 막내 님의 글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입니다.
심사위원 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