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무지개백일장 수상작

나다움상고해 / 소서, 2008년생

아빠에게


 안녕, 아빠. 아마 내가 기억하기로, 내가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아주 오랜만일 거야. 아마 몇 년 만일 테지. 우리 집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러다 보니 나도 편지를 쓰는 게 너무 어색해. 어쩌면 이건 솔직하지 못한 내 핑계일 뿐일지도 몰라. 아주 오랜만에 쓰는 편지에, 아빠가 싫어할 것 같은 이야기를 써서 미안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눈치를 좀 많이 보는 편이잖아.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아. 그렇기에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지향했고. 나름대로, 나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나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조심스러웠어. 그게 설령 내게 필수적인 것이고, 그런 것을 요청할 때 그 누구도 내게 눈치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걸 두려워했을지도 몰라. 갈등을 피하는 방법은 단순했어. 그냥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거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은 내가 착한 사람이 되면 돼. 내 이미지는 언제나 내가 누군가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깔아주니까. 다만 이 방법의 단점은, 점점 나를 숨기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나는 점차 거짓말이 늘어났어.


 아빠, 이건 아빠가 기억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작년 여름에 그런 일이 있었어. 여름에는 항상 퀴어 축제가 있잖아. 그리고 나는 그 전부터 아빠가 ‘이쪽’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왜일까, 그냥 알고 있었어. 그즈음에, 나는 내가 ‘이쪽’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어. 그래서 일부러 아빠랑 같이 있을 때, 뉴스를 틀었어. 퀴어퍼레이드를 하면 항상 뉴스에 나오니까. 아빠의 반응을 보고 싶었어. 내 예상과 아빠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어. 있잖아, 내가 그날 저들과 함께 저 거리에 서 있었다면, 아빠는 나를 보고 무어라 말했을 거야?


 아마 아빠는 내가 틀렸다고 말했을 거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가 커밍아웃했을 때, 그것을 대화 주제로 삼는 걸 피하기도 한다던데, 아빠는 어떻게 할 거야? 아마 아빠는 나를 피하지 않을 거야. 나를 붙잡고 내가 생각을 고쳐먹도록 설득하려 할 테니까. 그런데 아빠, 나는 이걸 꽤 오랫동안 고민했어. 어쩌면 중학교 시절부터일 수도 있지. 그래서 아빠가 나를 부정한다면 조금 상처받을지도 몰라. 


 아빠, 내가 나중이 되더라도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는다면 아빠는 분명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아빠 역시 내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삶을 살길 바라니까. 만일 아빠가 내게 왜 이제껏 연애하지 않냐고 물으며 타박한다면, 나는 커밍아웃을 하기보다는 미혼인 삼촌을 핑계로 삼을게. 아빠가 삼촌을 원망할지도 몰라. 원망받을 삼촌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비겁한 방법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어.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햇수로 6년째 보고 있는데, 나도 그 친구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생각한 것은, 아빠와 나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꽤 많을 거라는 거야. 이를테면, 아빠는 내가 오픈 채팅의 번개 모임에 나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 것을 모르잖아. 


 그렇기에 아빠는 아마 이 글을 읽지 못할 거야. 나는 절대로 아빠에게 아빠의 첫째 자식이 당신이 싫어하던 퀴어이고, 이를 주제로 해서 글을 썼다고 말하지 않을 거거든. 또 아빠는 ‘이쪽’에 무관심하니, 내가 나에 대해 쓴 수많은 글을 검색해서 찾게 될 일도 없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언젠가는 이 글을 아빠에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 완벽히 이해받거나, 지지받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아빠가 내 말을 듣고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좋겠어. 그거면 돼. 나는 잘못된 게 아니니까. 그러나,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있잖아, 내가 정체화를 한 건, 내가 누구인지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더라도 그 근처까지 온 건,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 아빠는 이게 선물이 아니고 그릇된 생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이건 내가 직접 찾고 고심한 끝에 나에게 전달한 하나의 소중한 선물이야. 많은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채로 지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데,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거잖아. 그러한 점에서, 이건 분명 내게 선물이야.


 아빠, 나는 아빠에게도 선물이 되고 싶어. 흔히 아이를 부모에게 찾아온 선물이라고 하잖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아빠에게 선물이 아닐까. 나는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버렸지만. 만일 아빠가 나의 이러한 모습을 알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소중한 선물이 아니라, 잘못 뽑은 뽑기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때에도 내가 아빠에게 여전히 선물이라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야. 그럴 기회를 내게 준다면-



[심사위원 작품평] 


소서님이 쓴 ‘고해’는 아빠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한 글입니다. 얼핏 보면 체념에 빠진 것 같지만, 스스로 발견한 정체성을 삶의 선물로 여기고 그 선물을 품에 안고 지금은 물론 앞으로 펼쳐질 생을 꾸려 나가겠다는 심지가 엿보입니다. 그 마음을 아빠에게 쓴 편지에 담아낸 소서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 소서님이 더는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심사위원 오세진